← S급 게이트의 마지막 생존자# 심연 앞에서
게이트 입구까지 가는 차 안에서 준혁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펜을 잡았다 놨다를 반복했다. 펜을 물었다 뱉었다를 반복했다. 노트북을 펼쳤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진정해, 준혁."
최민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준혁 옆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서울의 야경을 보고 있었지만, 준혁의 손 떨림은 놓치지 않고 있었다.
"진정할 수 없어."
준혁의 목소리는 이미 쉬어 있었다. 사흘 동안 계속 떨고 있었으니까.
"심연에 가서도 진정할 수 없을 텐데, 지금부터 진정하지 못하면 게이트 안에서 뭘 하겠어?"
최민준은 웃었다. 그의 웃음은 가볍고 자연스러웠다. 마치 준혁과 함께 낚시를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가는 것 같은 톤이었다. 그것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준혁은 최민준을 바라봤다. A급 헌터. 강화 계열 능력자. 펀치 하나로 B급 몬스터의 머리를 날려버릴 수 있는 사람. 그 사람도 떨리지 않을까?
"넌 안 무서워?"
"무섭지."
최민준은 곧바로 대답했다. 준혁이 기대했던 답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래도 가야지. 서연이가 우리를 선택했잖아. 넌 더 이상하고."
최민준이 준혁의 어깨를 톡 쳤다. 그의 손가락이 준혁의 셔츠에 닿았을 때, 준혁은 그 손의 온도를 느꼈다. 따뜻했다. 떨리고 있지 않았다.
"뭐가 이상해?"
"E급이 S급 게이트에 가는 거. 되게 이상하지. 죽어야 마땅한데도 살아있고, 약해야 마땅한데 기록자로 뽑혔고."
최민준은 이제 준혁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차의 가로등이 최민준의 얼굴을 지나갈 때마다 그의 눈이 밝혀졌다가 어두워졌다가를 반복했다.
"근데 서연이는 넌 뭔가 다르다고 했어."
"뭐가 다르다는데..."
"모르지. 그래서 좋은 거야. 서연이도 확실하게 설명하지 않았고, 넌 지금 떨고 있고, 나도 모르는데 가는 거지. 뭔가 재밌지 않아?"
준혁은 대답할 수 없었다. 재밌다는 감정은 멀리 있었다. 그곳에는 오직 불안감과 책임감만 있었다.
"최민준."
"응?"
"넌 왜 날 데려갔어? 심연은 죽음의 게이트야. 왜 E급을..."
"왜냐하면 넌 내 친구거든."
최민준의 대답은 빨랐다.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던 답처럼.
"친구라고 해서 죽음의 게이트에 데려가?"
"응. 친구니까."
최민준은 다시 창밖을 봤다. 서울의 야경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 처음 만난 게 언제지?"
"중학교."
"그때 넌 내 짐을 들어줬어. 엄청 무거운 짐인데도. 왜 들어줬어?"
준혁은 기억했다. 최민준의 짐이 무거웠었다. 몸이 작던 준혁에게는 특히 무거웠다.
"...그냥."
"그냥이지. 이유 없이. 친구니까. 그게 친구 아니야?"
최민준은 다시 준혁을 봤다.
"지금도 같아. 넌 내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 기술적으로는 재호나 지은이가 더 낫지. 근데 내가 심연에 들어가는데 넌 옆에 있어야 해. 왜냐하면 넌 내 친구거든."
"그게... 논리적이지 않아."
"논리적일 필요가 없어. 게이트는 논리적인 곳이 아니거든."
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게이트가 보였다. S급 게이트 '심연'. 밤하늘에 떠있는 그것은 마치 하늘이 찢어진 것처럼 보였다.
준혁의 손은 더 빨리 떨렸다.
"이제 무섭지?"
"엄청."
"좋아."
최민준은 준혁의 손을 잡았다. 준혁의 떨리는 손을 감싸 안듯이.
"무서운 게 정상이야. 무섭지 않으면 죽는 거거든. 넌 지금 무서우니까 살아날 거야."
"그게 무슨..."
"논리 없는 게이터의 말. 받아들여."
최민준은 준혁의 손을 세게 잡았다. 손가락이 깨질 것 같은 강도로.
"그리고 기억해. 넌 기록자야. 우리가 뭘 하든, 우리가 어디서 죽든, 넌 그걸 봐야 해. 그리고 써야 해. 왜냐하면 그게 다음 팀을 살리거든."
준혁의 눈이 흐릿해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최민준이 준혁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안았다. 차 안에서의 행동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솔직했다.
"넌 죽으면 안 돼. 넌 날 기록해야 돼. 내가 어디서 죽고, 뭘 말하고, 어떤 표정으로 죽는지. 넌 그걸 봐야 돼. 그리고 그다음 사람한테 말해줘야 돼. 이 정도면 되냐?"
"응."
준혁은 대답했다. 목이 메었지만.
"진짜로?"
"진짜."
"좋아. 그럼 우리 가자."
최민준은 손을 놨다. 준혁의 손은 여전히 떨렸지만, 이제는 그 떨림이 두려움만은 아닌 것 같았다.
차 밖으로 나갔을 때, 심연의 위력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검은 게이트의 표면에서 흘러나오는 저주의 기운이 피부를 자극했다.
박서연이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김재호와 오지은도.
최민준은 준혁의 앞에 섰다.
"이제부터 넌 내 뒤에만 따라와. 알겠어?"
"응."
"그리고 무슨 일이 있든, 계속 써.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은 후에도 써. 알겠어?"
"알겠어."
최민준은 웃었다. 그 웃음은 여전히 가볍고 자연스러웠다.
"그럼 심연, 들어가자."
그들은 검은 게이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준혁은 펜을 꼭 쥐었다.
# 심연
검은 벽을 통과하는 순간, 세상이 뒤집혔다.
준혁은 한 발을 내디뎠고 다음 발을 내디디려는 사이에 중력이 바뀌었다. 위아래가 흔들렸다. 아니, 흔들린 게 아니라 자신의 감각이 몸을 배신한 것 같았다. 어디가 위인지, 어디가 아래인지 판단할 수 없는 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땅이 나타났다.
준혁은 무릎을 꿇었다. 손바닥이 바닥에 닿았다. 차갑다. 축축하다. 뭔가 끈기 있는 액체가 묻어 있었다. 피인지 물인지, 아니면 다른 뭔가인지.
"괜찮아?"
최민준이 손을 내밀었다. 준혁은 그것을 잡고 일어섰다.
심연의 내부는 어둠이었다. 절대적인 어둠이 아니었지만, 마치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한 희미한 불빛만 있는 그런 어둠. 준혁의 눈이 적응하는 데 몇 초가 걸렸다.
동굴. 아니, 이건 동굴이 아니었다.
준혁의 숨이 멈췄다.
천장이 없었다. 위로 올려다보면 끝이 없었다. 어두운 회색 암벽이 수직으로 솟아 있었고, 그 위로 뭔가 — 아니, 너무 높아서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암벽 표면에는 발광하는 이끼 같은 것들이 있었고, 그것이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S급 게이트는 다르지."
박서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이미 주변을 스캔하고 있었다. 손가락이 공중을 그렸고, 그 궤적을 따라 파란 빛이 흘렀다. 헌터의 능력. 준혁은 그것을 보면서 펜을 움직였다.
*게이트 내부는 동굴 형태. 천장 높이는 측정 불가능. 발광 이끼로 인한 희미한 조명. 공기는 습도가 높고 차갑다.*
오지은이 먼저 걸어 나갔다. E급 정찰자. 그녀의 움직임은 조용했고 정교했다. 최민준이 그 뒤를 따랐다. 김재호는 박서연의 옆에 섰다.
준혁은 최민준 바로 뒤에 위치했다.
"조용히 해. 소리가 울린다."
박서연이 말했다.
동굴 바닥은 고르지 않았다. 돌멩이와 자갈이 섞여 있었고, 때때로 깊은 웅덩이가 있었다. 준혁이 한 번 발을 헛디디자 최민준이 팔로 그를 잡아 올렸다. 말 없는 터치였다.
그들이 진행한 지 5분쯤 됐을 때, 오지은이 손을 들어 올렸다.
정지 신호였다.
모두가 멈췄다. 준혁의 심장이 귀에서 울렸다.
"뭐야?"
박서연이 속삭였다.
오지은은 앞을 가리켰다. 준혁은 목을 길게 빼 앞을 봤다.
그곳은 일반적인 동굴이 아니었다. 바닥이 열려 있었다. 거대한 갈라진 틈이 있었다. 그 깊이는 어둠 때문에 알 수 없었지만, 준혁은 그 아래에서 뭔가가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물? 아니면 다른 뭔가?
최민준이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가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으로 갈라진 틈 아래로 던졌다.
돌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오래 들렸다.
그리고 돌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움직임이 있었다.
아래에서 뭔가가 깨어났다.
"물러나."
박서연이 짧게 말했다.
그들은 뒤로 물러났다. 준혁은 펜을 움직였다. 손이 떨렸다.
*갈라진 틈의 깊이: 최소 20미터 이상. 아래에서 움직임 감지. 정체 불명.*
갈라진 틈에서 뭔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먼저 나타난 것은 촉수였다. 회색빛이 도는, 축축한 표면의 촉수. 그것이 갈라진 틈의 가장자리를 휘감았다. 준혁은 그것이 몇 개인지 세려고 했지만, 어둠 때문에 불가능했다.
"악마 오징어. C급 몬스터."
박서연이 판정했다. "이 깊이라면... 여기 있을 수 있지."
"하나냐, 아니면 더 있냐?"
최민준이 물었다.
박서연의 손가락이 공중을 그었다. 파란 빛이 퍼졌다. 그녀의 능력이 게이트 내부를 스캔했다. 그 빛이 그려내는 형상들이 준혁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준혁은 숨을 멈췄다.
하나가 아니었다.
적어도 셋. 아니, 더 있을 수도 있었다. 박서연의 스캔 범위 너머에 뭔가가 더 있는 것 같았다.
"세 개 이상. 우리는 우회한다."
박서연이 명령했다.
그들은 빠르게 방향을 틀었다. 갈라진 틈의 반대쪽 벽을 따라 진행했다. 최민준이 준혁의 어깨를 가볍게 눌렀다. 계속 따라오라는 신호였다.
준혁은 뒤돌아 봤다.
갈라진 틈에서 촉수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들이 흔들리며 공중을 헤맸다. 준혁은 그 움직임을 펜으로 기록했다.
*악마 오징어 다수. C급. 촉수의 길이: 최소 3미터 이상. 동공: 없음. 감각기관 불명확.*
그들이 20미터를 더 진행했을 때, 박서연이 다시 멈췄다.
"앞."
오지은이 손을 들어 올렸다. 이번엔 다른 신호였다. 위험. 가까움.
준혁의 눈이 어둠을 뚫고 앞을 봤다.
뭔가가 있었다. 바닥 위에. 움직이지 않는 뭔가가.
최민준이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박서연과 김재호가 그의 양옆에 섰다. 오지은은 계속 정찰을 했다.
그것은 몸체였다.
헌터의 몸체.
준혁은 즉시 알 수 있었다. 옷, 무기, 배지. 이것은 이전에 여기 들어왔던 누군가였다. 이전 팀.
"얼마나 된 거 같아?"
박서연이 물었다.
최민준이 시체에 가까워졌다. 그의 얼굴이 변했다.
"일주일? 두 주?"
"신분증?"
오지은이 재빠르게 시체 주변을 수색했다. 준혁은 그것을 보면서 펜을 움직였다.
*미확인 사체. 헌터로 추정. 신분 미확인. 사인 불명. 시체 부패 상태로 추정 발견 시간 계산 불가능.*
최민준이 일어섰다. 그의 입술이 일직선이 되었다.
"이건 E급 마크네."
"E급이 심연에?"
박서연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누가 E급을 데리고 들어왔어."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진술이었다.
준혁은 최민준의 등을 봤다. 최민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움직임이 있었다.
이번엔 멀지 않았다.
준혁은 음 소리를 냈다. 아주 작은, 거의 들리지 않는 음성. 두려움이 목구멍을 조였다.
박서연의 손이 칼자루에 갔다.
"전투 준비."
최민준이 검을 뽑았다. 그 칼날이 희미한 이끼 빛에 반사되었다.
준혁은 펜을 쥐었다.
그리고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