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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게이트의 마지막 생존자

1

# 협회 신입 교육장 지하 삼층 훈련실. 형광등이 일렬로 늘어선 천장에서 흰 불빛을 쏟아내렸다. 준혁은 벽 모서리에 서 있었다. "야, E급 봤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혁은 눈을 돌리지 않았다. 앞을 봤다. 벽을 봤다고 하기도 뭐했다. 그냥 시선이 머물러 있는 곳을 봤다. "지원 직업이 뭐래? 기록자?" 웃음이 터졌다. 작은 웃음이 아니었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근처에 모인 열 명쯤 되는 신입들이 일제히 웃었다. 목에서 나오는 웃음이 아니라 코에서 나오는, 무언가를 깔보는 웃음이었다. 준혁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셔츠가 몸에 달라붙는 기분이었다. "기록자가 뭐하는 거야? 싸움 영상 찍어주는 건가?" "ㅋㅋㅋ 진짜 웃기네. E급이 뭐하러 여기 나왔어?" 더 이상 시선을 돌릴 곳이 없었다. 준혁은 신발을 봤다. 회색 운동화. 한 달 전에 샀다. 왼쪽 발가락 부분이 이미 벗겨지기 시작했다. '신청하지 말았어야 했다.' 후회는 너무 익숙한 감정이었다. 준혁은 가슴팍에 묵직하게 내려앉는 그것을 느꼈다. 호흡이 얕아졌다. "안 들었어? 너 E급이지?"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준혁은 여전히 신발을 봤다. "어? 무시하네. E급이 한테 말 거니까 대답을 해야지." 강태오였다. 목소리만 들어도 알았다. 강태오 특유의, 코 위쪽으로 울려 나오는 목소리. 그게 나오면 항상 누군가는 상처를 입었다. 준혁은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봤어, 이준혁." 강태오가 준혁의 이름을 불렀다. 이름이 마치 욕설처럼 들렸다. 준혁이 고개를 들었다. 강태오는 B급 헌터였다. 신입 교육에는 필요 없는 등급이었다. 강태오가 여기 있다는 것은 조사원이나 감독관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그냥 왔다. 그냥 이곳에 있기로 했다. "그래, 나야." 준혁의 목소리는 작았다. 하지만 떨리지 않았다. 떨리는 목소리를 낼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끝이었다. 그러면 더 물린다. 강태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록자? 진짜 그게 너의 지원 직업이고?" "네." "뭐하는 거야? 진짜로." 준혁은 답했다. 마치 외운 대사처럼 정확하고 차갑게. "던전 진입 시 발생하는 모든 사건과 현상을 기록하는 직업입니다. 사후 분석과 전략 수립에 필요합니다." "와, 뭐야. 저 E급이 협회 매뉴얼까지 외웠네." 웃음이 다시 터졌다. 이번엔 더 크게. 강태오가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준혁은 강태오의 목걸이가 보였다. S급 재료로 된 스틸 목걸이. 두께만 해도 손가락 굵기였다. 강태오는 그것을 하나 차고 다니는 것으로 B급 신분을 과시했다. "그런데 말이야. 기록자가 정말 필요한 게 맞아? 나한테는 그냥 짐처럼 보이거든." 강태오의 얼굴이 준혁에 가까워졌다. 호흡이 느껴졌다. 준혁은 눈을 감지 않았다. 뒤로 물러나지도 않았다. 그냥 강태오를 봤다. 강태오의 눈을 봤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공허함도 아니고 악의도 아니었다. 그냥 시간을 때우는 장난이 있을 뿐이었다. "그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태오가 웃음을 터뜨렸다. 길게. "E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E급뿐이야. 넌 모르겠지만, 진짜 던전에 들어가면 너 같은 건 진짜 짐이야. 누군가는 너 때문에 죽어. 알아?" 준혁의 목이 철렁했다. 강태오가 손을 들었다. 준혁의 가슴 앞에 손가락을 내밀었다. 튀어나온 가슴뼈를 누르듯이. "기록? 해봐. 나중에 너 때문에 누군가 죽으면 그걸 어떻게 기록할 건데?" 준혁은 말이 없었다. 강태오의 손가락이 계속 누르고 있었다. 훈련복 안으로 내려가는 압력이 느껴졌다. 그 순간. "강태오." 교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낮고, 차갑고, 끝내는 목소리였다. 강태오가 손을 뺐다. 준혁은 숨을 내쉬었다. 자기도 모르게 참고 있던 숨이었다. "신입 교육 과정에서의 괴롭힘은 협회 규정 위반입니다. 한 번 더 적발되면 교육 제외 처리하겠습니다." 교관은 교육실 입구에 서 있었다. 나이는 오십쯤 되어 보였다. 얼굴에는 특별한 표정이 없었다. 강태오가 제멋대로 웃음을 흘렸다. "알겠습니다." 그러곤 돌아서서 다른 신입들 곁으로 갔다. 신입들은 어느새 흩어져 있었다. 준혁의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교관이 준혁을 바라봤다. 준혁도 교관을 봤다. "괜찮나?" "네. 괜찮습니다." "거짓말하지 마. 네 얼굴이 말해주고 있어." 준혁은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사실을 말하면 더 약해 보인다. 그러면 더 물린다. 교관이 한 발 더 가까워졌다. 강태오와 달랐다. 강태오의 접근은 압박이었다. 이것은 다른 종류였다. "E급이 여기 온 이유가 뭐야?" 준혁이 대답했다. "헌터가 되고 싶어서입니다." "기록자가?" "네." 교관이 고개를 끄덕했다. "그럼 기억해. 강태오 말이 헌터의 전부가 아니야. 네가 필요 없으면 조합이 너를 불렀겠냐고. 기록자는 전쟁 같은 던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야. 누가 죽었는지, 어디서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를 기록하는 사람 없이는 다음 전략을 짤 수 없어. 알겠어?"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관이 돌아섰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다음 시간에 만나자." 신입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준혁도 움직였다. 신발끈을 다시 묶으며. 벗겨진 신발끈이 또 떨어질 것 같았다. 협회 대회의실. 천장 높이가 열 미터는 넘을 것 같은 공간에 둥근 탁자가 놓여 있었다. 그 주변에 선택받은 헌터들이 서 있었다. 준혁도 그중 하나였다. "심연(深淵)." 박서연 팀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두 글자만으로 공기가 달라졌다. 준혁은 숨을 고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심연은 전설이었다. 육 개월 전 S급 게이트로 판정된 후, 헌터들 사이에서 가장 위험한 던전이라고 불렸다. 박서연은 탁자 위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다. 검은색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팔뚝까지 올라온 그 장갑에는 마나 회로가 새겨져 있었다. S급 헌터의 것이었다. "팀 구성을 발표하겠습니다." 그녀의 눈이 천천히 각 헌터를 훑었다. 최민준이 서 있던 자리에서 발을 들었다. 선택받을 거라는 기대감. 준혁은 그것을 최민준의 어깨에서 읽을 수 있었다. 최민준은 A급 전투 헌터였다. 당연히 선택받을 것이다. "팀장: 나 박서연." 박서연이 자신을 가리켰다. "전투 담당 1순위: 최민준. A급 전투 헌터." 최민준의 입가가 올라갔다. 준혁도 그것을 봤다. 자신의 친구가 기뻐하는 것을 봤다. 그것이 준혁을 약간 편하게 만들었다. 최민준이 있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투 담당 2순위: 김재호. B급 헌터." 탁자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일어섰다. 준혁은 그를 본 적 없었다. 신입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협회 소속 경험 헌터였다. "치유 담당: 오지은. B급 지원 헌터." 여자 헌터가 고개를 끄덕했다. 그녀의 팔에는 녹색 마나가 감돌고 있었다. 치유 계열의 마나였다. "기록자: 이준혁. E급 헌터." 공기가 멈췄다. 준혁은 자신의 이름이 나왔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 이 초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E급. 기록자. 자신. 심연. "기록자는 필수입니다. S급 게이트에서는 전투 데이터가 곧 생존 전략입니다." 박서연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하지만 준혁은 그녀의 눈에서 뭔가를 읽을 수 있었다. 의심. 또는 판단. "이준혁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 박서연이 준혁을 봤다. 직접. 준혁의 목이 말랐다. 손가락이 떨렸다. 그는 자신의 손을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떨림이 보이지 않도록. 약함이 보이지 않도록. "네." 한 글자. 그것이 전부였다. 박서연은 준혁을 삼십 초 동안 봤다. 준혁은 그 시간이 삼십 분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맥박이 귀에 들렸다. 자신의 호흡이 너무 빨랐다. 자신의 손이 여전히 떨렸다. "기억해. E급." 박서연이 말했다. "S급 게이트에서는 전투 헌터들이 죽을 수 있어. 그들이 죽는 장면을 기록해야 해. 그들의 마지막 위치를 기록해야 해. 그들의 마지막 말을 기록해야 해. 그 모든 것이 다음 팀의 생존율을 결정해. 알겠어?"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는 대답할 수 없었다. 목이 너무 말랐다. "게이트 진입은 사흘 후. 장비 준비를 해. 그리고..." 박서연이 한 발 더 가까워졌다. 그녀의 높이는 준혁보다 십 센티 정도 낮았지만, 그 거리에서 그녀는 거대해 보였다. "죽지 마. 넌 우리가 필요한 사람이야." 그 말의 의미가 뭔지 준혁은 알 수 없었다. 그것이 믿음인지 압박인지. 협박인지 응원인지. 최민준이 준혁의 팔을 잡았다. "축하해, 준혁. 심연 가는 거야." 최민준의 얼굴은 밝았다. 하지만 준혁의 손은 여전히 떨렸다. 사흘. 준혁은 손가락을 꼬았다. 손가락이 하얀색이 될 때까지. 그 밤, 준혁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천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흰색 페인트와 갈라진 선들이 있을 뿐이었다. 심연. 그 단어가 뇌리를 맴돌았다. 다시. 또 다시. 멈추지 않았다. 준혁은 자신의 기록 장비를 점검했다. 작은 노트북. 펜 여섯 개. 그것이 전부였다. 매우 단순한 장비였다. 하지만 박서연이 말한 대로, 그것이 다음 팀의 생존을 결정할 것이었다. 그가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면, 다음 팀이 죽을 것이다. 그가 죽지 못하면, 다음 팀이 죽을 것이다. 준혁은 손가락을 다시 꼬았다. 사흘이 몇 초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