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원 없인 못 이겨요핸드폰 화면이 검은색에서 라이브 스트림 인터페이스로 전환되는 순간, 준호는 한숨을 쉬었다. 오후 2시 47분. 한국 시간으로는 가장 죽은 시간대다.
"어라, 뭐하시냐고요?"
준호는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자조적이었다. 카메라 앞의 그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다. 어제는 잠을 제대로 못 잤다. VR 스트리밍은 신경을 많이 써야 하니까, 수익이 없으면 더더욱 그렇다.
"오늘도 F등급 던전 깹니다. 한 번 가보시죠."
채팅창을 봤다.
**[시청자 1]**: 준호님 안녕하세요
**[시청자 2]**: ㄹㅇ 미친 게임 난이도
**[시청자 3]**: 오늘도 나옴?
3명. 매일 같은 3명이었다. 준호는 이들의 아이디를 다 알고 있었다. [우주먼지], [늦은밤곰], [라면왕]. 3명이 모두 나타났다는 건 좋은 신호였다.
"우주먼지님, 반갑습니다. 늦은밤곰님도 안녕하세요. 라면왕님, 오늘도 나오셨네요. 고마워요."
준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3명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이 시간에 이 채널을 찾는 사람은 준호를 좋아하거나, 아니면 그냥 심심한 사람이었다. 둘 다 고마웠다.
**[우주먼지]**: 오늘 뭐할거? 또 같은 던전?
**[늦은밤곰]**: 요즘 신작 나왔던데 안하나요
**[라면왕]**: ㅋㅋ 알고리즘 씹혔으니까 뭐해도 순위 안나오지 ㅋㅋ
라면왕의 댓글에 준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ㅋㅋㅋ 라면왕님 말이 맞아요. 우리 채널은 알고리즘에 버림받은 상태거든요. 신작도 나왔지만, 뭔가 좀 더 스토리가 있는 던전을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요즘 제 전술이 좀 발전했거든요."
거짓말이었다. 전술이 발전한 게 아니라 그냥 같은 던전을 반복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시청자들 앞에서는 항상 긍정적이어야 했다. 그게 스트리머의 직업윤리였다.
준호는 VR 헤드셋을 집어 들었다. 최신 제품은 아니었다. 뇌파 인터페이스 기술은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었지만, 감도가 떨어졌다. 고가 제품의 반 정도 가격에 중고로 구매한 것이었다.
"지금 진입합니다."
**[우주먼지]**: 화이팅!
**[늦은밤곰]**: 안전운행 부탁드려요
**[라면왕]**: ㅋㅋ 이번엔 좀 더 멋있게 해보자 준호
준호는 VR 헤드셋을 쓰고 있었다. 뇌파가 센서에 감지되는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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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로비.
준호는 거기서 생각했다. 이곳은 게임이지만, 또한 현실이기도 했다. 뇌파 인터페이스는 신경신호를 직접 받아들인다. 당신의 감각이 완벽하게 재현된다. 당신이 게임에서 맞으면, 당신의 뇌도 실제 통증을 느낀다. 물론 약화된 형태지만.
F등급 던전은 초보자용이었다. 몬스터도 약했고, 함정도 단순했다. 준호는 이 던전을 이미 200번 이상 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미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복은 지루했다.
"채팅 보고 있어요. 우주먼지님, 늦은밤곰님, 라면왕님. 오늘은 좀 다르게 가봐요."
준호는 던전 입구에 섰다.
"이 F등급 던전도 알고 보면 흥미로운 게 많아요. 예를 들어서..."
그는 입구 옆의 벽에 손을 대었다.
"이 벽이 사실 약하거든요. 한 번 부셔볼까요?"
준호의 손에 불이 피었다. 낮은 등급의 파이어 스킬이었다. 대여섯 번 때리면 벽이 부서질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게임 가이드에 나와 있지 않은 비밀이었다.
**[라면왕]**: 오 뭐하는거야? ㅋㅋ
**[우주먼지]**: 벽 부수는 거?
**[늦은밤곰]**: 처음 본다
준호가 벽을 때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째 때렸을 때, 벽이 부서졌다.
**[라면왕]**: 오오오오 뭔데 이게 ㅋㅋ
**[우주먼지]**: 이런 게 있었어??
**[늦은밤곰]**: 새로운 경로인가요?
"네, 숨겨진 경로예요. 이 안에는 약간의 아이템과 경험치가 있어요. 그리고..."
준호는 부서진 벽 안을 들여다봤다.
"잠깐만요."
그는 손을 집어넣었다. 안에는 작은 금속 상자가 있었다. 준호가 꺼냈다. 상자 안에는 회복 물약이 들어 있었다.
"이거 나중에 유용해요."
준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비록 3명의 시청자밖에 없었지만, 그는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플레이를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라면왕]**: 이 정도면 충분히 잘하는 거 아닌가? ㅋㅋ
**[우주먼지]**: 맞아요 준호님 잘해요
**[늦은밤곰]**: 구독 눌렀습니다
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카메라를 향해 웃음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런 댓글이 저한테는 정말 큰 힘이 돼요."
그 말도 진심이었다. 일일 수익이 5천 원 미만인 상황에서, 이 3명의 시청자는 그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준호는 던전을 계속 진행했다. 첫 번째 몬스터는 고블린이었다. 초보자도 이길 수 있는 약한 몬스터였다. 준호는 검을 뽑았다. 싼 제품이었지만, 무게감은 있었다. 뇌파 인터페이스 덕분에.
"이제 몬스터를 깨요. 이 고블린은 왼쪽으로 회피하는 패턴이 있어요."
준호가 공격했다. 고블린이 반격했다. 준호는 왼쪽으로 몸을 굴렸다. 고블린의 클로가 공기를 가르고 지나갔다.
**[라면왕]**: 오 봤어? 저 회피? ㅋㅋ
**[우주먼지]**: 준호님 잘하신다
**[늦은밤곰]**: 멋있어요!
준호가 반격했다. 검이 고블린의 옆구리에 명중했다. 고블린이 비명을 질렀다. 준호는 다시 공격했다. 고블린은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쓰러졌다.
**[라면왕]**: ㅋㅋㅋㅋ 이제 알겠다 왜 매일 여기 오는지
**[우주먼지]**: 준호님 근데 저희 채널 구독자 수 뭐예요?
**[늦은밤곰]**: 어? 구독자 수요?
준호가 잠시 침묵했다.
"지금 470명이에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실도 아니었다. 470명 중에 실제로 활동하는 사람은 이 3명이었다.
**[라면왕]**: 아 진짜... 알고리즘 씹혔네 ㅋㅋ
**[우주먼지]**: 고민이 많으시겠네요
**[늦은밤곰]**: 그래도 저희가 있잖아요!
준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네, 감사합니다. 정말로."
그는 계속 던전을 진행했다. 2층, 3층. F등급 던전은 5층짜리였다. 진행 속도는 빨랐다. 200번을 깼으니까.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3명의 시청자가 있었으니까.
**[라면왕]**: 오늘 라면 먹고 봤어 ㅋㅋ 그래서 아이디가 라면왕
**[우주먼지]**: ㅋㅋㅋ 아 그런 의미였구나
**[늦은밤곰]**: 저는 요즘 밤에 불면증이 있어서...
시청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준호는 그들의 말을 들었다. 게임을 진행하면서도 채팅을 놓치지 않았다.
"아, 불면증 힘들죠. 저도 가끔 있어요. 그럴 땐 이렇게 라이브 하는 게 도움이 돼요. 뭔가 한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준호는 5층 보스 앞에 섰다. 슬라임 보스였다. 약했다. 준호는 검을 들었다.
"보스 시간입니다. 이번엔 빨리 깨보겠습니다."
전투는 1분도 안 걸렸다.
**[라면왕]**: 오 끝?
**[우주먼지]**: 진짜 빨리 깨네요
**[늦은밤곰]**: 와 멋있어요!
던전 클리어. 준호는 보상을 받았다. 경험치 100, 골드 500원 상당. 일일 수익은 이제 5500원이었다.
"오늘도 클리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준호는 VR 헤드셋을 벗었다. 현실로 돌아왔다. 그의 방은 좁았다. 책상, 침대, 화면. 그게 다였다.
채팅창은 여전히 활동했다.
**[라면왕]**: 내일도 올거지?
**[우주먼지]**: 고마워요 준호님
**[늦은밤곰]**: 내일 뵙겠습니다!
준호가 웃음을 지었다.
"네, 내일도 올게요. 같은 시간에. 그때까지 안녕하세요."
라이브가 종료되었다.
준호는 방금 벌어진 일을 생각했다. F등급 던전, 3명의 시청자, 5500원의 일일 수익. 이게 그의 현실이었다.
그는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내일도 같은 일이 반복될 거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그리고...
준호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직은.
준호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시간은 오후 3시 15분. 내일의 F등급 던전을 위해 뇌파 인터페이스를 재부팅하는 루틴이었다.
헤드셋을 쓰고 눈을 감았다.
"루나, 시스템 체크."
뇌파 인터페이스 AI인 루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라이하고 기계적인 톤이었다.
**[루나]**: "체크 시작합니다. 뇌파 신호 정상. 신경 동기화율 98.7%. 모든 시스템 정상입니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상적인 확인이었다.
그런데 3초의 침묵이 흘렀다. 루나가 뭔가 더 말하려는 듯했다.
**[루나]**: "준호님... 이상 신호가 감지되었습니다."
준호의 눈이 떠졌다.
"이상 신호? 뭐가."
**[루나]**: "플랫폼 중앙 매칭 시스템에서 비정상적인 접근이 기록되었습니다. 당신의 계정에 대한 매칭 쿼리가 발생했습니다."
준호는 일어났다. 침대에서 내려와 책상 앞에 앉았다. 모니터를 켰다.
"어떤 종류의 매칭?"
**[루나]**: "데이터 분석 중입니다... 준호님, 이건 좀 이상합니다."
"뭐가 이상해?"
**[루나]**: "당신의 플레이어 등급은 F입니다. 그런데 시스템이 당신을 S등급 던전으로 매칭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침묵.
준호는 그 말을 다시 들었다. 뭔가 잘못 이해한 건가 싶었다.
"...뭐?"
**[루나]**: "S등급 던전입니다. 당신의 현재 레벨로는 진입 불가능한 던전입니다."
준호의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서 멈췄다. S등급 던전은 상위 1% 프로 스트리머들만 도전하는 곳이었다. 그곳의 보스 한 마리는 일반 플레이어 100명의 목숨값과 맞먹었다.
"그게... 지금?"
**[루나]**: "예. 약 2분 전입니다. 매칭 시도는 이미 취소되었으며, 시스템 오류로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루나]**: "취소되기 직전, 매칭이 부분적으로 확정되었습니다. 당신의 생체 데이터가 S등급 던전 입장 큐에 올라가 있습니다."
준호는 화면을 바라봤다. 뭔가 이상했다. 자신의 계정이 해킹당한 건가? 아니면 플랫폼의 버그?
"그게 뭐가 문제야? 그냥 취소하면 되지 않아?"
**[루나]**: "일반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경우..."
루나가 멈췄다. 3초.
"...루나?"
**[루나]**: "준호님, 매칭 시스템에 대한 접근 권한이 일반 관리자 수준을 초과합니다. 이것은 플랫폼 최상위 권한자만 할 수 있는 작업입니다."
준호의 등이 차가워졌다.
"최상위 권한자가... 날 S등급 던전으로 보내려고 했다는 거야?"
**[루나]**: "결론적으로, 그렇습니다. 의도적인지 오류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준호는 깊게 숨을 쉬었다. 생각을 정리하려 했다. 뭔가 이상했다. 무명 스트리머인 자신이 왜 S등급 던전 매칭 대상이 될까?
"그래서... 지금 내 상태가 뭐야?"
**[루나]**: "당신은 아직도 S등급 던전 입장 큐에 있습니다."
"그걸 빼줄 수 있어?"
**[루나]**: "저는 그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최상위 권한자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준호는 의자에 기대앉았다. 이건 뭔가 이상했다. 플랫폼 운영진에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과정은 며칠이 걸릴 거였다.
그때 모니터에 알림이 떴다.
**[시스템 공지]**: VR 플랫폼 운영진 김서연 님이 당신과 연결을 요청했습니다.
준호는 눈을 깜빡였다.
운영진이? 지금?
"루나, 이게 뭐야?"
**[루나]**: "플랫폼 운영진으로부터의 직접 연결 요청입니다. 매우 드문 일입니다."
준호는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는 수락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깜깜해졌다가, 여성의 얼굴이 나타났다. 30대 초반, 날카로운 눈빛. 김서연이었다.
"준호님, 안녕하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했다. 준호는 인사를 건넸다.
"안... 안녕하세요."
"지금 이상한 일이 있으셨을 거 같은데요."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루나가 제 계정이 S등급 던전 매칭 큐에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김서연은 잠깐 준호의 얼굴을 바라봤다. 뭔가를 계산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맞습니다. 시스템 오류입니다."
"네..."
"그런데요, 준호님." 김서연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지금 그 오류를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준호의 눈썹이 올라갔다.
"왜요?"
"기술적인 이유입니다. 현재 매칭이 부분적으로 확정된 상태에서는, 이를 취소하려면 시스템 리부트가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당신의 뇌파 데이터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
준호는 말을 잃었다.
"손상된다는 게... 뭐죠?"
"기억 손실, 신경 기능 이상, 최악의 경우 뇌파 인터페이스 영구 불가능." 김서연은 차분하게 말했다. "당신은 뇌파 인터페이스 없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나요?"
준호는 답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모든 수익이 뇌파 인터페이스 VR 스트리밍에서 나왔다.
"그래서... 뭘 해야 하나요?"
김서연이 화면 너머에서 뭔가를 입력했다. 준호의 모니터에 새로운 창이 떴다.
**[긴급 매칭 선택안]**
- 1. S등급 던전 진입 (리스크 없음)
- 2. 매칭 큐 유지 및 대기 (리스크: 72시간 이내 자동 진입)
- 3. 시스템 리부트 요청 (리스크: 뇌파 데이터 손상 가능성)
준호는 세 가지 선택지를 읽었다.
"이게... 뭐하는 거죠?"
"규정상 매칭이 부분적으로 확정된 상태에서는, 플레이어가 선택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당신의 선택입니다."
준호의 호흡이 가빠졌다.
"저는... F등급 던전만 했어요. S등급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확률적으로 생존 불가능합니다."
김서연의 말은 너무나 직설적이었다. 준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데 왜 저한테 선택지를 줘요? 그냥 리부트하면..."
"뇌파 데이터 손상에 대한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김서연이 말했다. "당신이 선택한 것이면, 책임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준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건 악마의 거래 같았다. 세 가지 선택지 모두 최악이었다.
1번은 죽음.
2번은 72시간 후 죽음.
3번은 뇌파 손상.
김서연이 화면 너머에서 말했다.
"72시간 안에 결정하세요. 그 후로는 자동으로 1번이 실행됩니다."
"잠깐, 이게 정말 오류인가요?"
김서연은 잠깐 침묵했다. 3초.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웃음을 지었다.
"그건... 당신이 던전 안에서 알아내야 할 것 같네요."
화면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연결이 끊겼다.
준호는 그 자리에 남겨졌다. 모니터 앞에서, 세 가지 선택지를 바라보며.
그리고 루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루나]**: "준호님... 저는 당신이 뭘 선택하든 따라가겠습니다."
준호는 답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마우스 커서가 첫 번째 선택지 위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S등급 던전.
손가락이 클릭 위치에 멈췄다.
준호는 눈을 감았다.
"루나."
**[루나]**: "네."
"만약 내가... 죽으면?"
**[루나]**: "당신은 리스폰 지점으로 돌아올 겁니다. 던전은 계속됩니다."
준호의 손가락이 떨렸다.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