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울하게 죽은 나, 원수 가문 막내로 환생했다밤이 깊었을 때였다.
카이센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시간. 시종들이 모두 물러나고, 가족들이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 저택의 호흡이 느려지는 그 순간.
그는 일어났다.
발걸음은 가볍게, 흔적은 남기지 않게. 전생의 기사 훈련이 아직도 몸에 남아 있었다. 칼을 들지 않은 지 5년이었지만, 움직임은 녹슬지 않았다.
저택의 구조는 이미 파악되어 있었다. 3일간의 탐색으로 주요 복도, 방, 계단의 위치는 머릿속에 지도처럼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지하실은 달랐다. 지하실은 누군가의 발길이 닿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감춰져 있었다.
카이센이 찾아야 할 것은 입구였다.
1층의 도서실을 지났다. 창밖으로 정원의 어둠이 보였다. 불이 꺼진 복도를 통해 주방 방향으로 향했다. 주방 뒤편에는 창고가 있었고, 창고 안쪽에는...
그의 손가락이 벽의 특정 지점을 짚었다.
차갑고 매끄러운 돌이었다. 다른 벽들과는 다른 질감. 오래되지 않은 시공. 아마도 2년에서 3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였다. 그 시기는 발렌티나가 정치적 영향력을 크게 확장한 때와 일치했다.
카이센의 손이 벽 곳곳을 더듬었다. 표면에는 흔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한 지점에서 멈췄다.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홈. 손톱 끝으로만 감지할 수 있는 수준의 움푹한 부분.
그는 그곳을 눌렀다.
금속음이 울렸다. 낮고, 짧고, 매우 신중한 소리였다.
벽이 움직였다.
미끄러지는 소리는 거의 없었다. 정교한 기계 장치였다. 아마도 엄청난 비용을 들인 공사였을 것이다. 카르디언 가문의 재력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어둠이 입을 벌렸다.
카이센은 주저하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이 내려갔다. 돌계단. 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내려가자 공기의 질감이 변했다. 지표면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차가워졌다. 습기가 있었고, 곰팡이와 금속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다른 냄새. 카이센이 전생에서 알던 냄새였다.
에센스의 냄새.
그것은 돌의 먼지와 비슷했지만, 더 자극적이었다. 마치 번개가 칠 때 공기가 타는 냄새처럼,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한 전기적 향취. 전생에서 균열을 다니며 수천 번 맡은 냄새였다.
계단이 끝났다.
카이센의 눈이 조금씩 어둠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일반인보다 좋았다. 아마도 전생의 기사 훈련의 부산물일 것이었다. 약간의 빛도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지하실이 펼쳐졌다.
공간은 생각보다 넓었다. 아마도 저택 전체 1층 면적의 절반 정도는 되어 보였다. 벽을 따라 설치된 철제 선반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위에는...
에센스.
수십 개. 아니, 수백 개.
각각의 에센스는 작은 유리 용기에 담겨 있었다. 그 안에서 미약한 빛이 나오고 있었다. 파란색, 초록색, 붉은색, 흰색. 에센스의 등급에 따라 색상이 달랐다. 색이 밝을수록, 순도가 높을수록 더 강력한 것이었다.
카이센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손가락이 한 용기를 스쳤다. 차갑고, 단단하고, 그 안에서 거의 느껴질 수 없을 정도의 진동이 있었다. 살아 있는 것처럼.
"이것이..."
그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 자동으로 속삭이는 수준의 음성.
이것이 카르디언 가문의 진정한 자산이었다. 왕국의 다른 귀족들이 알지 못하는 규모. 왕국의 왕조차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에센스의 저장량. 이 정도의 에센스가 있다면, 몇 명의 기사를 만들 수 있었다. 아니, 기사 여럿이 아니라 거의 초강력급 에센스 사용자를 배출할 수 있었다.
그러면 왜 시몬은 약했는가.
카이센의 눈이 다시 선반들을 훑었다. 에센스들의 배치. 뭔가 패턴이 있었다. 더 밝은 것들은 한쪽 구석에, 흐릿한 것들은 다른 쪽에. 그리고 가장 안쪽에는...
그곳에는 훨씬 큰 용기들이 있었다.
카이센이 그쪽으로 걸어갔다. 발소리는 여전히 없었다. 기사의 훈련은 침묵을 몸에 익혀 주었다.
가장 안쪽 용기는 손가락만 한 크기였다. 그 안에는 거의 투명에 가까운 에센스가 있었다. 그것은 순도가 극도로 높다는 의미였다. 아마도 수십 개의 일반 에센스를 정제해서 만든 것일 수도 있었다.
옆에는 다른 용기들이 놓여 있었다. 같은 크기, 같은 투명도. 여러 개. 아마도 5개에서 10개 정도.
카이센의 손가락이 그 중 하나에 닿았을 때, 그것이 움직였다.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금속 손잡이. 마치 약병처럼 밀폐되어 있었다. 카이센이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을 때, 무게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하지만 그 안의 에센스가 주는 압력은 매우 컸다. 마치 별을 들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손가락에서 거의 따끔거리는 감각이 일었다.
"최상급. 아니, 그 이상."
카이센은 용기를 다시 제 위치에 놓았다. 정확히, 흔들리지 않게.
이것들이 뭔지 알았다. 이것들은 개인용 에센스였다. 아마도 발렌티나 자신의 것이거나, 또는 특정 인물을 위해 비축된 것이었다. 왕국의 누군가가 이 규모의 에센스를 정기적으로 받는다면, 그들의 각인 능력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었다.
카이센의 눈이 지하실의 다른 부분으로 옮겨졌다.
선반들 너머, 벽 한쪽에는 철제 문이 있었다. 더 작은 문. 아마도 금고나 저장실일 것이었다. 카이센이 그쪽으로 향했을 때, 그 앞에서 멈춰 섰다.
문 옆 벽에는 손가락 크기의 홈들이 여러 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매우 낮은 음성으로 무언가가 새겨져 있었다.
카이센이 귀를 기울였다. 아니, 눈을 기울였다. 매우 희미한 글씨였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거의 읽을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수준의 글씨.
하지만 그의 눈은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균열의 문. 진입은 승인된 자만."
카이센의 호흡이 깊어졌다.
균열의 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전생에서 기사로 활동할 때, 특정 지역에는 균열이 자연적으로 출현하지 않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매우 비싼 공사였고, 왕국 중 손꼽히는 가문들만 할 수 있다고 했다. 카르디언 가문이 그 중 하나였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이곳의 균열은 언제 만들어졌는가.
카이센이 문을 조사하려 손을 뻗었을 때, 뒤에서 소리가 났다.
발걸음.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
카이센은 즉시 움직였다. 문으로 향하는 대신, 에센스 선반들 사이로 몸을 날렸다. 그의 몸은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호흡도 멈췄다. 심장도 거의 멈추었다.
기사의 훈련. 사냥꾼의 본능.
발걸음이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것은 카이센이 알아채지 못한, 매우 조용한 발걸음이었다. 즉, 이곳을 자주 방문하는 사람이었다.
지하실의 한 귀퉁이가 밝아졌다.
손에 들린 등불. 그것도 아주 밝은 등불이 아니라, 거의 촛불 수준의 약한 불이었다. 이곳에서 눈을 다치지 않기 위한 조정이었다.
그 등불을 들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루시아.
하인복을 입은 여자. 카이센이 저택에서 본 가장 오래된 하인 중 한 명. 그녀의 나이는 4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있었고, 눈빛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루시아는 지하실로 들어가 몇 발자국을 더 내딛다가 멈췄다. 그리고 선반 중 하나에서 유리 용기를 꺼냈다. 초록색 에센스. 중급 정도의 순도.
그녀는 그것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마치 무게를 재는 것처럼.
그 다음, 루시아는 작은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냈다. 에센스를 조심스럽게 감싸서, 주머니 안으로 넣었다. 움직임은 매우 익숙했다. 이것을 여러 번 한 사람의 움직임.
카이센은 그림자 속에서 루시아를 관찰했다.
루시아가 다시 등불을 들고 돌아섰을 때, 카이센의 눈은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에는 죄책감도, 두려움도, 그리고 거의 모든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 아래에는, 절망이 있었다.
루시아가 계단으로 향했다.
카이센은 그녀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발걸음이 위층으로 올라가고, 창고 벽이 다시 닫히고, 침묵이 지하실을 감싸는 순간까지.
그제야 그는 몸을 일으켰다.
손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아니, 떨리는 것이 아니라 에센스의 기운에 반응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지하실의 에센스 농도는 일반적인 균열 내부와 맞먹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몸이 반응하고 있었다.
카이센이 다시 문 앞으로 갔다. 그 손가락 홈들을 다시 봤다.
5개의 홈. 아마도 지문 인식 장치일 것이었다. 아니면 손가락의 뼈 구조나 에센스 반응을 감지하는 더 고급 기계장치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 문 안에는 뭐가 있는가.
카이센은 그 답을 찾으려고 했지만, 멈춰야 했다. 계단에서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다른 발걸음이었다. 더 무겁고, 더 빠르고, 더 분주한.
카이센은 즉시 다시 어둠으로 몸을 숨겼다.
이번에는 두 명이었다. 그리고 하나는 매우 익숙한 목소리였다.
"늦었다."
시몬의 목소리였다.
계단의 발걸음이 완전히 사라지고 한참이 지났을 때, 카이센은 움직였다.
지하실의 공기는 여전히 에센스로 진동하고 있었다. 그의 신체가 그 파동을 감지하며 반응했다. 손가락 끝이 약한 열을 내뿜고 있었다. 전생에서 경험한 적 있는 감각이었다. 균열 깊숙한 곳에서 고농도 에센스를 마주할 때의 그것.
카이센은 계단을 올라갔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주방 창고의 벽이 닫혀 있었다. 루시아가 몸을 숨길 수 있는 위치를 확인해 두었으니, 그 방법을 따랐다. 손가락으로 벽의 틈을 찾고, 안쪽으로 밀어넣으면 기계음이 울렸다.
저택의 복도는 밤의 침묵으로 가득했다.
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손을 들어 천장을 응시했다. 손가락 끝에서 아직도 미묘한 열기가 남아 있었다. 에센스의 기운이 자신의 신체 안에 어떤 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 다음 날 아침, 마리아 헬렌은 카이센의 침실 문을 두드렸다.
"레온 도련님, 아침입니다."
카이센은 일어났다. 밤샜지만 피로한 표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조심했다. 레온이라는 인물은 약한 체질, 무능함, 무기력함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틀 안에서 움직여야 했다.
마리아는 방에 들어와 창문의 커튼을 열었다. 아침 햇빛이 쏟아졌다. 그녀의 동작은 효율적이었다. 하인의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위치의 누군가가 하는 것처럼.
"어제는 잘 주무셨나요?"
카이센은 침대에 앉아 하품했다. 무능한 아이처럼.
"네, 마리아 선생님."
마리아는 옷장에서 오늘의 옷을 꺼냈다. 그녀의 손이 잠깐 멈췄다. 매우 짧은 순간이었지만, 카이센의 눈에는 선명했다. 그녀가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도련님, 혹시 어제 밤에 어디 가신 적 있나요?"
카이센의 심장이 한 박자 건너뛰었다. 하지만 얼굴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요. 잠만 잤어요."
마리아는 그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은 검은 보석처럼 차갑고 깊었다. 카이센은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여인이 단순한 가정교사가 아니라는 것을.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마리아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완전하지 않았다. 일부가 생략되어 있었다.
아침 식사 후, 카이센은 도서관에서 마리아를 만났다. 그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을 불렀다.
"도련님, 조금 시간이 되세요?"
카이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서관의 문이 닫혔다. 마리아는 카이센 앞에 앉았다.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이제 그것은 연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현실이었다.
"저는 이 가문에서 10년을 일했어요. 도련님이 태어난 지 얼마 후부터요."
카이센은 침묵했다. 그녀가 계속하기를 기다렸다.
"당신이 어제 밤 어딘가로 나갔어요. 그리고 돌아왔어요. 가정교사인 저는 그걸 알아요. 왜냐하면..."
마리아는 손을 들어 카이센의 손등을 보였다. 그 위에는 미세한 먼지가 붙어 있었다. 지하실의 그것이었다.
"...당신의 손에 지하실의 먼지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카이센의 호흡이 깊어졌다. 하지만 그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지하실은..."
"허락되지 않은 공간이죠. 맞습니다."
마리아가 그의 말을 끊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다.
"저도 그곳에 들어간 적이 있어요. 도련님과는 다른 이유로요. 하지만 우리 둘 다 알아요. 그곳에 뭐가 있는지."
카이센은 마리아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공포가 없었다. 오직 확인 같은 무언가가 있었다.
"당신은 특별해요. 도련님."
마리아가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는 느꼈어요. 당신의 눈동자가 다르다는 것을. 약한 몸이지만, 그 안에 뭔가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제 밤 당신은 그걸 확인했어요."
"선생님이 뭘..."
"저를 믿으세요, 도련님."
마리아가 다시 끊었다.
"저는 당신의 편이에요. 이 가문에서 당신의 진정한 편은 저밖에 없어요."
카이센의 손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에센스 때문이 아니었다.
"왜 그럽니까?"
"왜냐하면 저는 당신이 뭐인지 알기 때문이에요."
마리아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당신은 그냥 약한 아이가 아니에요. 당신의 눈빛, 당신의 움직임, 당신의 생각의 속도. 모든 게 다르다. 마치... 다른 사람이 이 몸을 빌려 입고 있는 것처럼."
카이센의 세상이 멈췄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정확히 뭘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저는 당신이 누구인지 묻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뭔지도요. 저는 다만..."
마리아가 일어났다.
"...당신이 이 가문의 모든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지하실에 있는 것들 말이에요. 그리고 당신이 그것들로 뭘 할 건지, 저는 알고 싶어요."
"만약 제가 당신을 해치려면?"
카이센이 물었다.
마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완전한 미소였다.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이 가문의 비밀을 본 순간부터,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뭔가 하려고 왔어요. 뭔가를 고치려고. 아니면 뭔가를 풀려고."
그녀의 말이 정확했다.
"저는 10년을 이 가문에서 일했어요. 저는 이 가문의 모든 비밀을 알아요. 발렌티나 가주님의 비밀도, 시몬 도련님의 비밀도, 엘리아 아가씨의 비밀도. 그리고 루시아의 비밀도."
마리아가 창으로 나가려던 문 앞에 섰다.
"도련님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저를 부르세요. 제 도움이 필요하면요."
"왜 당신이?"
카이센이 물었다.
마리아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가문은 잘못되었으니까요. 그리고 당신은... 당신은 그걸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처럼 보여요."
그녀가 도서관을 나갔다.
카이센은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날 오후, 시몬은 다시 지하실로 내려갔다. 이번에는 아무도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하지만 카이센은 알았다. 지하실의 문이 닫혔을 때의 소리로.
그리고 마리아는 도서관의 창문 옆에 서서,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낡은 일기장이 들려 있었다. 그 안에는 이 가문의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었다.
밤이 되었을 때, 카이센은 마리아의 방을 찾아갔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요, 도련님."
마리아가 안에서 대답했다.
카이센은 문을 열었다. 마리아는 침대에 앉아 있었고, 그녀의 옆에는 무언가 두꺼운 폴더가 놓여 있었다.
"이게 뭡니까?"
"이 가문의 모든 기록이에요. 지난 20년간의."
마리아가 폴더를 손가락으로 쳤다.
"당신이 필요한 건 아마도 이것들일 거예요."
카이센은 폴더를 집었다. 무거웠다. 그 무게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선생님, 질문이 있습니다."
"뭔데요?"
"당신은 이 가문을 배신하는 겁니까?"
마리아가 웃었다. 진심 어린 웃음이었다.
"아니에요. 저는 제 신분을 지키고 있어요. 가정교사로서의."
그녀의 눈이 더 밝아졌다.
"가정교사는 학생을 지켜야 하니까요. 당신이 누구든, 당신이 뭐든. 당신은 제 학생이에요."
카이센은 폴더를 들고 나갔다. 마리아는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다. 그녀의 입술에는 여전히 미소가 남아 있었다.
손가락이 일기장의 페이지를 넘겼다. 그 안에는 이름이 있었다. 발렌티나. 시몬. 엘리아. 그리고 또 다른 이름들.
마지막 페이지에는 새로운 글씨가 적혀 있었다. 오늘 밤 쓴 것이었다.
"레온 도련님. 혹은 다른 이름의 존재. 당신이 이 가문을 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