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울하게 죽은 나, 원수 가문 막내로 환생했다# 균열
균열 내부의 공기는 흙과 쇠 냄새로 가득했다.
카이센은 손에 든 검을 내려놓았다. 손가락이 더 이상 힘을 주지 못했다. 다섯 해를 기사단에서 보낸 신체도 한계가 있었다. 특히 이렇게 오래 균열 내부에 있으면.
"배신자."
시몬 카르디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검이 카이센의 어깨 위에서 멈춰 있었다. 휘두를 준비가 된 상태. 한 치 물러설 여지가 없었다.
"난 배신하지 않았다."
카이센의 목소리는 차갑다. 이미 포기한 사람처럼 들렸다. 그건 반쯤은 사실이었다.
"에센스를 독점한 죄로 고발된다. 왕국의 재판을 받을 것이다."
그 말은 거짓이었다. 카이센은 알고 있었다. 시몬 뒤에 있는 발렌티나 카르디언—그의 어머니—이 무엇을 원하는지.
재판? 그런 건 없을 것이다.
검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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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짧았다.
그 대신 들어온 건 빛이었다.
균열의 벽이 갈라졌다. 아니, 그런 표현은 정확하지 않았다. 균열 자체가 열렸다. 카이센이 본 것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의 변화가 아니었다. 마치 세계 자체가 눈을 뜨는 것 같았다.
"무엇이...?"
카이센은 자신의 피를 흘리면서도 그 빛을 바라봤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자의든 타의든 마지막 남은 힘으로.
그 순간, 음성이 들렸다.
말이 아니었다. 음성도 아니었다. 그것은 직접 뇌에 새겨지는 무언가였다. 마치 누군가가 카이센의 정신을 집어 들고 무언가를 속삭이는 것처럼.
*"돌아가."*
그 단어는 명령이 아니었다. 제안도 아니었다. 그것은 거의... 자신의 내면에서 나온 목소리처럼 들렸다. 그런데 그게 불가능했다.
*"기억하고 돌아가."*
카이센의 눈이 떨어졌다. 시몬의 검이 그의 목을 관통했다. 적어도 그래야 했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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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났다.
아니, '깨어났다'는 표현도 정확하지 않았다. 카이센은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검의 감촉, 피의 맛, 그리고 그 다음의 암흑—모두가 죽음의 신호였다.
그런데.
신체가 있었다.
너무 작은 신체였다. 손가락이 다섯 개였지만 모두 가늘고 약해 보였다. 펼쳐진 손가락들이 떨렸다. 공포 때문이 아니라 단순한 근력 부족 때문에.
"...레온."
누군가가 속삭였다. 그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걱정으로 가득 찼다.
카이센은 눈을 떴다. 천장이 보였다. 낯선 천장. 목재로 만들어진, 비싼 천장. 정교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다행이야."
여성의 목소리였다. 카이센은 고개를 돌렸다. 움직임이 느렸다. 신체가 정말로 약했다.
여성이 웃고 있었다. 갈색 머리, 따뜻한 눈. 카이센은 그녀를 모르고 있었다.
"열이 내렸어. 이제는 괜찮을 거야."
여성은 카이센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손이 부드러웠다. 온기가 있었다. 카이센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그 손을 피했다.
여성의 얼굴이 일순간 상처 입은 표정으로 변했다.
"...미안해."
카이센의 목소리는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온 것은 그 목소리였다.
"괜찮아.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여성이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거짓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하지만 카이센이 본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가 본 것은 여성의 눈빛이었다. 그 눈빛 뒤에 감춰진 계산이었다.
'누군가의 부모를 맡은 사람의 표정이 아니다.'
카이센은 생각했다. 자신의 생각이 여전히 명확했다. 자신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카이센이 물었다.
여성은 웃음을 멈췄다.
"난 마리아야. 너의 가정교사."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넌 레온 카르디언이고, 여기는 카르디언 저택이야."
카르디언.
그 이름이 카이센의 정신에 전기처럼 흘렀다.
그의 기억은 균열 내에서 끝났어야 했다. 시몬의 검이 내려와야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야 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죽인 가문의 이름을 들었다.
카이센은 천천히 자신의 손을 들어올렸다. 얇고 약한 손이었다. 어린 아이의 손이었다. 하지만 그 손은 자신의 손이었다.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손이었다.
마리아가 말했다: "더 이상 움직이지 마. 몸이 약해."
카이센은 듣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손을 들어올렸고, 마리아의 손을 밀어냈다. 움직임은 약했지만 분명했다.
"넌... 누구인가?"
카이센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다른 질문을 했다.
"난 널 봤는가?"
마리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전에 만난 적이 없어."
그 대답은 거짓이었다. 카이센은 즉시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눈이 좌상향으로 흔들렸다. 거짓말하는 사람의 눈이었다.
카이센은 천천히 자신의 몸을 일으켜 앉았다. 움직임이 매우 느렸다. 자신의 신체가 이렇게 약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정신은 명확했다.
"난... 어디에 있는가?"
"침실이야. 너의 침실."
"내 침실."
카이센은 그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봤다.
방은 넓었다. 창문이 두 개 있었다. 가구는 모두 비싼 것들이었다. 책장에는 책들이 가득 찬 것으로 보아, 이 침실의 주인은 독서를 좋아하거나, 적어도 그런 척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거울이 있었다.
카이센은 거울 쪽으로 기어갔다. 움직임이 느렸다. 마리아가 그를 말렸지만, 카이센은 듣지 않았다.
거울 앞에 도달했을 때, 카이센은 자신의 얼굴을 봤다.
그것은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다.
대신 그것은 어린아이의 얼굴이었다. 갈색 머리, 창백한 얼굴, 약해 보이는 눈. 그리고 그 눈의 깊이에는—
깊이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카이센은 그 깊이를 알았다. 그것은 자신의 깊이였다. 자신의 오십 년의 인생이, 자신의 모든 경험이, 자신의 모든 기억이 그 작은 눈에 갇혀 있었다.
"이제 알겠나?"
마리아가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이제 더 이상 따뜻함이 없었다.
"이제 넌... 레온 카르디언이야."
카이센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봤다. 그 얼굴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자신의 입이 움직였다.
"나는... 카이센이다."
그가 중얼거렸다. 그 소리는 자신이 들었고, 마리아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 말을 무시했다.
"쉬어. 너는 아직 열이 안 내린 아이일 뿐이야."
마리아가 말했고, 카이센은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매우 조용한 웃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오래된 웃음이었다.
열이 내렸다.
또는 내리고 있었다. 카이센은 정확히 판단할 수 없었다. 신체의 감각이 혼란스러웠다. 손가락 끝에서 머리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다. 아니, 낯설다는 표현이 맞지 않았다. 너무 작았다.
그는 손을 들었다.
아이의 손이었다. 흙빛 같은 피부, 가느다란 손가락, 손톱까지도 작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추위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다섯십 년간 자신의 몸이었던 것이 사라졌고, 대신 이것이 남아 있었다.
침대는 부드러웠다. 비단 침대. 왕도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의 침대일 것이다. 천장은 높고, 벽은 흰색이었다. 아침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카르디언 저택의 침실. 그는 이곳을 알았다. 다섯 년 전, 자신을 죽인 그들의 집.
마리아가 앉아 있었다.
침대 옆의 나무 의자. 금색 팔걸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비싼 것이었다. 여자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검은색 드레스, 흰색 앞치마. 가정교사의 정장. 그녀의 얼굴은 차분했다. 마치 매일 밤 열이 있는 아이를 간호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깼군요."
그녀가 말했다. 차를 내려놓으며. 접시에 찻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카이센은 입을 열었다. 목이 타올라 있었다. 며칠을 잠들었던 것 같았다. 아니, 며칠이 아니었다. 그건 훨씬 더 길었다. 균열 안에서 죽었다. 시몬의 검이 자신의 흉부를 꿰뚫었다. 그 다음은—
그 다음은 빛이었다.
말할 수 없는 빛. 색도 없고, 형태도 없는 그 무엇. 그리고 음성이 있었다. 언어가 아닌, 그러나 명확히 의미를 전달하는 무언가. 그것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갔는지, 카이센은 모른다.
"물을..."
그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맑고, 약하고, 어린 목소리였다. 카이센은 순간적으로 말을 멈췄다. 그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현실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리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눈에는 뭔가가 있었다. 호기심?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 마치 그녀가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
"물을 드릴게요."
그녀가 일어났다. 동작은 우아했다. 여자는 테이블 위의 투명한 유리잔을 집었다. 물은 맑았다. 그녀는 유리잔을 카이센의 입술 근처에 가져갔다.
카이센은 마실 수 없었다. 아이의 몸으로는 유리잔을 쥘 힘이 없었다. 그는 입을 벌렸고, 물을 마셨다. 그 감각도 낯설었다. 아이의 혀, 아이의 목, 아이의 모든 것이 물을 받아들였다.
물이 따뜻했다. 아니, 물 자체는 차가웠지만, 그 물이 흘러내리는 경로가 따뜻했다. 마치 자신의 몸이 이 물을 환영하는 것처럼. 마치 이 작은 몸이 이미 며칠을 견디고 있었던 것처럼.
"천천히."
마리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따뜻한 목소리였다. 다시 따뜻했다. 마치 아까 그 엄격한 음성은 환상이었다는 듯이.
카이센은 물을 마셨다. 충분히. 자신의 아이 몸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그리고 나서 그는 자신의 손을 다시 봤다.
손이 떨렸다. 이번엔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깨어남의 떨림이었다. 죽음에서 깨어난 것의 떨림. 혹은 그 이상의 무언가.
"당신은... 누구인가?"
카이센이 물었다. 그 목소리는 여전히 낯설었다. 하지만 그 음성 뒤에 있는 것은 분명했다. 다섯십 년의 기억. 기사 카이센의 지능. 균열 내에서 죽어가며 느꼈던 배신감.
마리아는 웃음을 지었다. 작고, 조용한 웃음.
"전 마리아 헬렌이에요. 당신의 가정교사입니다."
"거짓이다."
카이센이 말했다. 그 말은 확신에 찬 것이었다. 아이의 목소리에서 나왔지만, 그것은 기사의 확신이었다.
마리아의 웃음이 멈췄다. 그녀의 눈이 변했다. 마치 어떤 가면이 벗겨진 것처럼. 그 눈에는 뭔가가 있었다. 깊은 것. 오래된 것.
"그렇군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웃음을 지었다. 이번엔 더 진실된 웃음이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가 바로 그 느낌을 가지고 있군요. 그 통찰력."
카이센은 말하지 않았다. 그는 관찰했다. 마리아의 움직임, 그녀의 호흡, 그녀의 눈의 흐름. 그것이 기사 시절부터 그의 습관이었다. 위험을 감지하는 방법.
"당신이 여기에 온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을 거예요."
마리아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그녀의 자세는 여유로웠다. 마치 아주 오랜 대화의 재개인 것처럼.
"누가... 보냈는가?"
카이센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미 질문의 형태가 아닌 명령이 담겨 있었다.
마리아는 입술을 닫았다. 그리고 천천히, 매우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녀의 손이 빛에 비쳤다. 손등에 뭔가가 있었다. 표식 같은 것. 마치 문신 같은.
카이센의 눈이 좁혀졌다.
그것은 각인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각인이 아니었다. 색이 이상했다. 은색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것의 형태는... 카이센은 본 적이 있었다. 균열 안에서. 그 신비로운 빛이 나타나기 직전, 자신의 손에 나타났던 같은 형태를.
"당신은..."
카이센이 말을 시작했다.
"저는 그냥 당신의 가정교사예요."
마리아가 손을 내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다시 따뜻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더욱 기묘했다.
"하지만 당신은 레온 카르디언이 아니라는 건 이제 둘 다 안다는 뜻이에요."
침실이 조용해졌다. 햇빛이 여전히 창문을 통해 들어왔고, 새소리가 들렸다. 평온한 아침. 하지만 그 평온함 아래에는 뭔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카이센은 자신의 손을 다시 봤다. 작은 손. 어린 손.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기사의 의지가 있었다.
"내 이름은 카이센이다."
그가 중얼거렸다. 그 말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마리아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마리아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웃음이었다. 마치 그녀가 이 순간을 수십 년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다면 우린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요?"
그녀가 물었다. 그 질문에는 위협이 없었다. 대신 제안이 있었다. 동의.
카이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천장을 봤다. 하얀 천장. 그 천장 너머에 뭔가가 있을 것이다. 진실이. 그리고 복수가.
"먼저," 카이센이 말했다. "나는 이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마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시작해야겠네요."
그녀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는 문으로 향했다. 문 앞에서 그녀는 돌아서서, 카이센을 바라봤다.
"환영합니다, 카이센. 당신의 새로운 삶에."
그 말이 끝났을 때, 카이센은 마리아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눈 깊숙한 곳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호기심? 아니면 두려움?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었다.
카이센은 침대에 누운 채, 자신의 어린 손을 들었다. 그리고 주먹을 쥐었다. 힘이 없었다. 아이의 힘. 하지만 그 주먹 안에는 다섯십 년의 기억이 있었고, 그 기억 안에는 살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살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