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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배우, 관객 반응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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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장은 생각보다 낡았다. 낡은 아파트 세트장의 벽은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고, 조명 스탠드들은 각도를 고정하기 위해 테이프로 감싸져 있었다. 제작비가 극도로 제한된 드라마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준호는 이런 현장을 수십 번 봤다. 항상 같은 냄새였다. 카레 냄새와 먼지와 절망. "이준호 배우!" 조연출이 소리쳤다. 준호는 손을 들었다. 이미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회색 후드티와 검은 바지. 단역 복장이었다. "네." "5분 뒤에 1차 촬영 들어갑니다. 씬 3-2, 준호님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역할이에요. 주인공한테 카페인 음료 건네주는 신이니까, 대사는 '여기 있습니다' 그것만 있으면 됩니다." '여기 있습니다.' 준호는 그 문장을 반복했다. 입 속으로. "감정 표현 없이 담담하게 해주세요. 그냥 일하는 사람 느낌으로." 조연출은 이미 다음 배우를 찾고 있었다. 준호에게 할 말이 없었다. 그는 편의점 카운터 뒤에 서서 기다렸다. 주인공 배우는 30대 중반의 여자 배우였다.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은 본 적 있는 사람이었다. 드라마 조연으로 자주 나오는 얼굴. 그녀는 준호를 보지 않았다. 스크린 테스트 때처럼, 준호는 배경이었다. "스탠바이." "롤링." "큐." 주인공 여배우가 편의점에 들어왔다. 피곤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카운터에 다가왔다. 준호는 미리 손에 들고 있던 음료수를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목소리가 작았다. 감정이 없었다. 그것이 문제였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여배우가 음료를 받아들었다. 돈을 내밀었다. 준호가 받았다. "고마워." 여배우가 말했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컷!" 감독이 손을 내렸다. "좋아요. 한 번 더 해볼게요. 이번엔 조금 더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그 단어가 준호에게는 이상했다. 자연스럽다는 것이 뭐였을까. 자신의 얼굴이 자연스럽지 않다면, 몸이 자연스럽지 않다면, 마음이 자연스럽지 않다면, 뭘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 "다시." "스탠바이." "롤링." "큐." 두 번째 테이크. 준호는 같은 움직임을 반복했다. 음료를 내밀고, 대사를 말하고, 돈을 받았다. 이번엔 미소를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미소가 어색했다는 것을 자신도 느꼈다. "컷!" "괜찮아요. 다시 한 번."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준호는 감독이 만족할 때까지 같은 신을 반복했다. 매번 조금씩 다르게.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감독의 얼굴에는 항상 미묘한 실망이 있었다. "좋습니다. 다음 신으로 넘어갈게요." 감독이 마침내 말했다. 준호는 카운터에서 내려왔다. 손가락 끝이 떨렸다. 혹은 그렇게 느껴졌다. 다음 신은 카페 신이었다. 준호는 또 다른 단역 배우와 함께 카페 배경에 앉았다. 이번엔 대사가 없었다. 배경일 뿐이었다. 주인공과 조연이 말을 나누는 동안, 그는 커피를 마시고 있어야 했다. 자연스럽게. 커피는 식었다. 준호는 잔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반복했다. "좋아요." 감독이 만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배경은 중요하지 않았다. 주인공과 조연의 표정이 중요했다. 촬영은 오후 5시까지 이어졌다. 준호는 여섯 개의 신에 나왔다. 다섯 개는 배경이었고, 하나는 '여기 있습니다'였다. 그것이 그의 오늘이었다. 화장실에서 분장을 지우고 나왔을 때, 한 명의 PD가 복도에서 서 있었다. 준호는 그를 인식하는 데 1초가 걸렸다. 오태양이었다. 방송국의 유명한 PD 중 한 명이었다. 준호는 그를 몇 번 봤다. 업계 행사에서, 혹은 뉉스에서. 얼굴은 알려진 편이었다. "이준호 배우?" 오태양이 물었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 맞다. 스크린 테스트에서 봤어요. 이번에도 이 작품에 캐스팅되셨네요." PD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준호가 이해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호기심. 혹은 그 이상의 것. "제 이름은 오태양입니다. 혹시 시간이 있으시면, 근처 커피숍에서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준호는 잠깐 멈췄다. PD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신인 배우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PD의 일이지만, 준호는 이미 신인이 아니었다. 10년이 지났다. 그는 그저 떠도는 배우였다. "네. 좋습니다." 준호가 대답했다. --- 커피숍은 촬영장에서 5분 거리에 있었다. 오태양은 준호의 앞에 앉았다.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그저 준호를 보고 있었다. "저는 신인 배우들을 자주 봅니다. 이 업계에서 10년 이상 일했거든요. 대부분 처음에는 에너지가 있어요. 야망도 있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에너지가 사라져요. 그 대신 절망이 남아요." 오태양이 말했다. 준호는 그의 얼굴을 봤다. 호기심은 여전했다. "당신을 보면, 그 절망이 보여요. 하지만 동시에 뭔가 다른 게 있어요. 뭘까요?" 준호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당신이 오늘 촬영장에서 한 일들을 봤습니다. 평범했어요. 배경이었고, 대사도 없었고. 하지만 당신을 보는 것이 불편했어요." 불편했다. 그 단어가 준호에게 튕겨 나왔다. "뭔가 계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마치 모든 것을 분석하고 있는 것처럼." 오태양이 앞으로 몸을 숙였다. 그의 눈은 진지했다. "혹시 당신, 뭔가 특별한 게 있어요?" 준호는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커피는 식었다. 하지만 그는 마셨다. 시간을 버는 방법이었다. 대답을 피하는 방법이었다. "특별한 건 없습니다." 준호가 말했다. "그냥 배우를 하고 싶을 뿐입니다." 오태양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믿음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네." "당신은 왜 배우를 해요?" 그 질문은 준호가 하루에 여러 번 받는 질문이었다. 한지은도 물었고, 감독도 물었고, 자기 자신도 물었다. 하지만 매번 대답은 달랐다. 혹은 대답이 없었다. 준호는 커피를 마셨다. 이번엔 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오태양은 웃음을 터뜨렸다. 진심 어린 웃음이었다. "좋아. 그 대답이 정직한 것 같아. 당신이 필요한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좀 더 큰 작품이에요. 혹시 관심이 있으신가요?" 준호는 그를 봤다. "조건이 뭔가요?" "뭐 특별한 건 없어요. 그냥 당신을 보고 싶어서. 당신이 뭘 하는지." 오태양이 명함을 준호에게 내밀었다. 준호는 그것을 받았다. 촬영장은 회색빛이었다. 세트장 전체가 낡은 카페로 꾸며진 곳이었는데, 조명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설정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준호는 그 안에서 카운터 뒤에 서 있었다. 배역명은 '카페 직원'이었다. 대사는 세 줄이었다. "주문 받겠습니다." "네,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세 줄이 전부였지만, 준호는 이미 그것들을 수십 번 반복했다. 어제 밤새 거울 앞에서. 오늘 아침 화장실에서. 촬영장 와서도 한 시간 전부터 끊임없이. 오태양의 명함은 호텔 가방에 있었다. 준호는 어제 밤 그것을 봤다. 그리고 오늘 아침 다시 봤다. 세 번을 봤다. 네 번을 봤다. 마지막엔 손가락으로 글씨를 따라 그으며 봤다. '혹시 관심이 있으신가요?' 관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준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것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만약 이 프로젝트에서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감독의 목소리가 울렸다. "준비됐습니까?"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배우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유명한 신인이었다.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이미 한두 번 나온 적이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선명했다. 준호는 그것을 봤다. 그리고 자신의 눈은 그보다 흐렸다는 것을 알았다. '자연스럽게.' 감독의 지난 피드백이 떠올랐다. 준호는 호흡을 다시 정렬했다. 어깨의 힘을 빼려고 했다. 얼굴의 표정을 느슨하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어색했다. 마치 자신이 카운터 뒤에 서 있지 않고, 누군가를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여배우가 카운터에 다가왔다. "주문 받겠습니다." 준호가 말했다. 목소리는 차가웠다. 마치 진짜 아르바이트생처럼. 아니, 그게 문제였나? 준호는 한 번도 카페에서 일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생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자신이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카페 직원의 목소리'를 흉내 냈을 뿐이었다. 여배우가 메뉴를 펼쳤다. "아메리카노 한 잔, 아이스로 부탁합니다." "네, 맞습니다." 준호가 말했다. 이번엔 좀 더 부드럽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어딘가 틀렸다. 마치 그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의 입을 통해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감독이 손을 들었다. "컷." 준호의 몸이 경직되었다. "다시. 이번엔 좀 더...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그 단어는 준호를 짓누르는 돌덩이 같았다. 자연스럽다는 게 뭔지 알 수 없는데, 자꾸만 그것을 요구했다. 다른 모든 것들처럼. 두 번째 테이크. 세 번째 테이크. 네 번째 테이크. 매번 감독은 '컷'을 외쳤다. 매번 같은 피드백을 했다. 여배우는 계속 완벽했다. 그녀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웠고, 목소리는 생생했고, 눈빛은 항상 선명했다. 준호는 그것을 봤다. 계속 봤다. 그리고 자신과의 차이를 계속 느꼈다. 다섯 번째 테이크에서 준호는 무언가를 포기했다. 그냥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그냥 말하자. 그냥 서 있자. "주문 받겠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눈앞이 빛났다. 희미하지만 명확한, 그런 빛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준호의 눈 바로 앞에서 투명한 유리판에 글씨를 쓰는 것 같았다. 준호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감각은 계속됐다. 무언가가 준호의 시야에 침범하고 있었다.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뇌 속에 직접 인쇄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숫자였다. 준호는 눈을 깜박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숫자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공감도: 12%]** **[긴장도: 34%]** **[몰입도: 8%]** 준호의 호흡이 빨라졌다. "컷!" 감독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준호는 그것을 듣지 못했다. 그의 모든 주의력이 그 숫자들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무엇인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여배우가 그를 봤다. 준호의 얼굴이 창백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요?" 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네... 네,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숫자들은 계속 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공감도: 12%]** **[긴장도: 37%]** **[몰입도: 9%]** **[호감도: 24%]** **[신뢰도: 31%]** 신뢰도? 호감도? 이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 감독이 다가왔다. "뭐가 문제입니까?" "아, 아니습니다. 잠깐만..." 준호는 눈을 감았다. 어두워졌다. 숫자들도 함께 사라졌다. 혼돈했다. 준호는 눈을 다시 떴다. 숫자들이 돌아왔다. 마치 그들이 항상 거기 있었는데, 준호가 눈을 감은 순간만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괜찮습니까? 계속할까요?" 감독의 음성이 멀게 들렸다. 마치 물속에 있는 것처럼.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계속하겠습니다." 여배우가 다시 들어왔다. 카운터에 다가왔다. 이번엔 뭔가 달랐다. 준호가 말했을 때, 숫자들이 움직였다. **[공감도: 12% → 18%]** **[긴장도: 37% → 28%]** **[몰입도: 9% → 14%]** 준호는 멈췄다. 그것들이... 변했다. 감독이 손을 들었다. "컷... 뭔가 달라졌는데? 계속 그렇게." '그렇게'가 무엇인지 준호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숫자들은 알고 있었다. 마치 그것들이 준호의 연기를 평가하는 누군가의 눈이었던 것처럼. 그 다음부터는 빨라졌다. 각 테이크마다 준호는 숫자들을 봤다. 그리고 그것들이 올라가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목소리를 조금 더 부드럽게 내리면 공감도가 올라갔다. 눈빛에 조금 더 감정을 담으면 몰입도가 올라갔다. 어깨를 조금 더 이완시키면 신뢰도가 올라갔다. 마치 그것들이 준호가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지시하는 것처럼. 아홉 번째 테이크에서 감독이 다시 말했다. "좋아. 이 정도면 되겠어요." 숫자들을 보자, 준호는 모든 지표가 60% 이상에 도달해 있었다. 여배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아까와 달랐다. 아까는 그녀의 표정에 약간의 의아함이 있었다. 지금은 없었다. 지금은 있었던 것은 인정이었다. 촬영이 끝나고 세트장이 조용해졌을 때, 준호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 숫자들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몰랐다. 하지만 그것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준호가 눈을 감아도, 뜨고 있는 한 언제나 거기 있었다. 마치 그의 눈이 이제 다른 것을 보도록 만들어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