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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배우, 관객 반응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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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테스트 오디션 대기실의 형광등이 준호의 얼굴을 창백하게 비췄다. 벽에 붙은 달력은 2024년 4월을 가리키고 있었다. 열여섯 번째 떨어진 오디션이었다. "다음, 이준호." 준호는 벌떡 일어섰다. 의자 다리가 바닥에 스치는 소리가 났다. 대기실에 남은 여섯 명의 젊은 배우들이 시선을 돌렸다가 금방 다시 자신들의 스크린에 집중했다. 준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을 보는 그들의 눈빛에 있던 것. 경쟁자를 향한 관심이 아니라, 이미 떨어진 사람을 보는 연민. 녹음실로 들어서자 세 명의 심사위원이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왼쪽에는 캐스팅 디렉터, 중앙에는 드라마 PD, 오른쪽에는 제작사 대표. 준호는 자신이 입장할 때 그들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무관심. 순간적인 무관심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안녕하세요. 이준호입니다." 준호는 옷깃을 정렬했다. 남색 셔츠. 깔끔하지만 너무 튀지 않는 선택. 10년간의 경험이 만든 전략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PD가 대본을 들었다. "아버지 역할입니다. 딸이 가출했다는 소식을 받은 장면이에요. 3페이지 첫 번째 단락부터 다섯 번째까지." 준호는 대본을 받아 읽었다. 간단한 씬이었다. 아버지가 경찰에게 신고하는 장면. 분노, 절망, 불안이 뒤섞인 감정을 보여야 하는 대목이었다. 표준적인 가족극의 클리셰였다. 그는 깊게 숨을 쉬었다. "시작하겠습니다." **"우리 딸을 찾아줄 수 없단 말입니까?"** 목소리가 떨렸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다. 경찰관 배우도 준호의 절망에 자연스럽게 응답했다. 감정의 전달이 순간적이었다. 30초 안에 완성된 작은 공연. 심사위원들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감사합니다." 준호는 인사했다. 그들이 다시 보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오디션장을 떠나며 핸드폰을 켰다. 09시 47분. 다음 오디션은 11시였다. 강남역에서 여의도까지 30분. 충분했다.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준호의 손가락이 검색창을 누르고 있었다. '이준호 배우'.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는 것은 이제 일과였다. 지난 5년간 출연한 작품들이 떴다. 검색 결과는 자신에 대한 가혹한 보고서였다. — *드라마 〈그해 봄날의 약속〉 아저씨 역할 (2편 출연)* — *영화 〈이별의 계절〉 택시 기사 역할 (3분 출연)* — *드라마 〈도시의 밤〉 동료 의사 역할 (1편)* 조연. 단역. 엑스트라에 가까운 배역들. 그의 이름은 엔드크레딧에도 나오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IMDb에 등재되지 않은 작품도 많았다. 준호는 핸드폰을 내렸다. 지하철이 여의도역에 도착했다. --- "또 떨어졌어?" 한지은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었다. 준호의 매니저였고, 유일한 조력자였다. 그녀는 준호가 들어오자마자 알아챘다. 어쩌면 표정이었을지, 어쩌면 걸음걸이였을지. "응." 준호는 의자에 앉았다. 자신의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식어 있었다. 한지은은 한숨을 쉬었다. "몇 번?" "16번." "이달?" "응." 한지은이 그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조명이 좋은 카페에서였지만, 준호의 피부는 칙칙해 보였다. 다크써클이 눈 아래 검게 자리잡고 있었다. 30대 중반의 남자라기보다는 40대 초반처럼 보였다. "10년을 이렇게 하고 있어야 해?" 한지은의 목소리가 작았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커피잔을 들었다. "진심이야, 준호. 우리 다른 직업 찾아봐. 너는 충분히 잘생겼고 목소리도 좋고, 유명한 드라마나 영화 한 번 더 나오면... 아니지, 지금도 나오고 있는데 아무도 안 본다고. 이게 말이 돼?" "계약이 있잖아." "계약?" 한지은이 웃음을 흘렸다. "너랑 나는 계약이 아니라 신뢰도 없는 협력이야. 진짜 계약은 기획사와 네 사이에 있는 건데, 그들은 너한테 관심이 없다. 너는 지금 유명인도 아니고, 팬도 없고, 수익도 없다. 그냥... 사라져도 아무도 안 본다고." 준호는 한지은을 봤다. 그녀는 진심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한지은은 5년 전 준호가 고용한 매니저였다. 그때도 그는 이미 무명이었고, 그녀는 자신의 무능한 클라이언트를 위해 광고비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 일했다. "한 번만 더." "뭘 한 번만?" "기회를." 한지은은 테이블 위에 팔뚝을 얹었다. "너는 10년을 기다렸어. 충분하지 않아?" "아직 아니야." "뭐가 아직?"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봤다. 여의도의 봄날이 무관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그들은 준호를 보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3개월." 한지은이 준호를 봤다. "3개월만 더. 그 사이에 뭔가 달라지지 않으면... 난 손을 놔." 한지은은 입술을 깨물었다. "너 뭘 하고 있는 거야, 정말. 뭘 바라는 거야?" "모르겠어."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준호는 정말로 알지 못했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 연기를 사랑했던가? 아니면 그냥 10년을 이미 써버렸으니까 돌아가지 못했던가. "너 우울증 있어? 진짜로." "없어." "그럼 뭐가 문제야?" 준호는 커피를 마셨다. 차가운 액체가 목을 내려갔다. 쓴 맛이 혀에 남았다. "문제가 없으면 좋겠어." 한지은은 그의 얼굴을 한참 봤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의자에 기댔다. "이따 저예산 드라마 촬영이 있어. 단역이지만, 기본료는 있다. 가야지?" "가지." "정말?" "응." 한지은이 핸드폰을 꺼냈다. "촬영 시간이 14시인데, 13시까지 스튜디오에 가. 분장팀이 기다리고 있어. 이번엔 아버지 역이야." 또 아버지 역이었다. 10년 동안 그는 많은 아버지를 연기했다. 아버지, 형, 선배, 동료, 의사, 경찰, 택시 기사. 그 어느 것도 그를 기억하지 않았다. "알겠어." 한지은은 준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정말로 3개월이야?" "응." "약속이야?" 준호는 그녀의 눈을 봤다. 한지은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누군가가 자신을 믿고 있다는 것. 그것도 아무 근거 없이. "약속이야." 한지은은 손을 뺐다. "그럼 너 어디 가?" "13시까지 시간이 있네. 한강 좀 다녀올게." "혼자?" "응." 한지은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준호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한 번 결정하면 바꾸지 않는 사람. 아니, 굽히지 않는 사람. 그것이 그의 장점이기도 했고 약점이기도 했다. --- 한강 둔치. 오후 1시 가까운 봄날의 바람이 준호의 얼굴을 스쳤다. 벚꽃은 이미 졌고, 버드나무의 새순이 연초록색으로 강가를 장식하고 있었다. 준호는 벤치에 앉았다. 옆에는 아이들을 이끌고 온 엄마들이 있었다. 멀리에는 조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가 자신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포털사이트에 들어갔다. 연기 관련 뉴스를 검색했다. — *신인 배우 박수진, 뮤지컬 주연 캐스팅 확정* — *톱스타 김혜원, 신작 영화 출연 확정... "인생 최고의 작품이 될 것"* — *연기 신동들의 경쟁, 2024년 주목할 배우 10인* 그 목록에는 준호가 없었다. 당연히. 준호는 핸드폰을 내렸다. 한강의 흐름을 봤다. 물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정체되지 않고, 멈추지 않고. 그것이 물의 본성이었다. 준호는 10년간 정체되어 있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역할을 반복하면서.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한지은이었다. "뭐?" "촬영 준비 안 했어? 지금 스튜디오로 와." "시간이..." "지금 와야 돼. 급하게 상황이 바뀌었어. 배우 중 한 명이 못 나온대. 너한테 더 큰 역할을 줄 수도 있다고." 준호는 벤치에서 일어섰다. 큰 역할. 그 단어가 가슴에 박혔다. "지금 간다." 준호는 한강을 떠났다. 벚나무 잎이 스치며 흙냄새가 났다. 봄이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봄이었다. 모든 계절처럼, 준호의 10년처럼.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을 수도 있었다. 스튜디오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그는 알 수 없는 예감을 느꼈다.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뭔가가 부스스 일어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희망이 아니었다. 준호는 희망을 포기한 지 오래였다. 그저 자신도 모르는 어떤 충동이었다. 계속 나아가라는 명령. 멈추지 말라는 신호. 준호는 스튜디오로 향했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스튜디오 지하 대기실은 젊은 배우들로 가득했다. 준호가 도착했을 때, 이미 여섯 명의 신인들이 대본을 들고 있었다. 모두 스무 살 중후반. 피부가 반들거리고, 눈빛이 예리했다. 준호는 이 장면이 낯설지 않았다. 10년을 반복한 그것. 신인 배우들이 자신보다 나을 것 같은 공간. "준호, 여기." 한지은이 손을 들었다. 그녀는 근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있었다. 준호가 가까워지자 한 잔을 건넸다. "상황이 뭐야?" "배우 이름은 박수진. 신인인데, 어제 드라마 촬영 중에 무릎을 다쳤대. 수술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이 장면 촬영을 못 한대."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맡을 역할은 무엇인가? 그것이 중요했다. 조연인지, 아니면 한지은이 말한 '더 큰 역할'인지. "그럼 내가 뭘 하는 건데?" "아직 감독이 결정을 안 했어. 넷 중에 한 명을 고르는 거야. 너랑 다른 신인들이랑." 준호의 눈이 대기실을 다시 훑었다. 그 신인들은 이미 대본을 암기하고 있었다. 한 명은 거울에 비춰 자신의 표정을 확인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입모양을 반복했다. 그들은 준비된 표정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준호와는 달리. "대본 줄게." 한지은이 손으로 태블릿을 밀었다. 준호는 화면을 켜서 스크립트를 읽기 시작했다. 7페이지. 그 정도면 조연 역할이었다. 여자 주인공의 남동생 역할. 자살을 생각하다가 누나의 설득으로 마음을 돌리는 씬. 감정적인 장면이었다. 준호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 "이거... 남은 시간이 얼마야?" "30분." 30분. 준호는 대본을 다시 읽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마음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글자였다. 배우의 것이 아닌, 누군가 다른 사람의 감정. "불안해?" 한지은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아니야." 준호는 거짓말했다. 불안했다. 10년간 반복된 같은 거짓말. --- 대기실의 문이 열렸을 때, 감독과 캐스팅 디렉터가 들어왔다. 감독은 50대 초반, 피로한 얼굴이었다. 그의 표정은 이미 누군가를 정해두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먼저 이름과 경력을 말씀해주세요." 첫 번째 신인이 일어섰다. 이름은 강준영. 서울예술대 졸업생. 최근에 뮤지컬에서 엑스트라를 했다고 했다. 그의 음성은 선명했고, 제스처는 정확했다. 그는 이미 자신이 선택될 것을 알고 있는 표정이었다. "감사합니다." 두 번째, 세 번째도 비슷했다. 모두 재능이 있어 보였다. 모두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모두 준호보다 나았다. "이준호." 준호가 일어섰다. "경력은?" "10년입니다." 감독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것은 동정이었다. 10년을 해서 아직도 단역만 하는 배우. 그런 시선. "뭘 하셨어요?" "드라마 조연, 영화 단역... 주로 그런 일들입니다." "그런데 왜 이제 이 역할을 하시려고?" 질문은 예상 밖이었다. 준호는 한지은을 바라봤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상태였다.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역할이 중요해서입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감독이 다시 물었다. 그의 질문에는 의심이 섞여 있었다. 이 10년차 무명 배우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의심. "네." 준호는 그것만 말했다. --- 촬영장은 작은 원룸 세트였다. 침대, 책상, 창문. 여자 배우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유명 배우는 아니었지만, 얼굴이 밝았다. 그녀는 준호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나는 이미 이 씬을 여러 번 해봤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감독이 카메라를 확인했다. "자, 그럼 한 번 해봅시다. 이준호 배우부터." 준호는 침대에 앉았다. 대본에 따르면, 그는 방금 수면제를 먹으려던 남자였다. 손에 약병이 있어야 했다. 누군가가 약병 소품을 건넸다. 준호는 그것을 들었다. 가벼웠다. 플라스틱 약병. "시작." 감독의 목소리. 준호는 약병을 들었다. 손이 떨렸어야 했다. 하지만 떨리지 않았다. 그저 팔이 있었고, 손이 있었고, 약병이 있었다. 그것뿐이었다. 여자 배우가 들어왔다. "오빠, 뭐 하는 거야?" 준호는 대본에 따라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비어 있어야 했다. 죽음을 향한 눈. 하지만 그의 눈은 그저 눈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목소리도 평탄했다. 감정이 없었다. 그것이 준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여자 배우가 다가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녀의 눈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이 씬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약병을 내려놔. 제발." 준호는 약병을 내렸다. 감정 없이. "컷." 감독이 손을 들었다. 그의 얼굴은 지루함으로 가득했다. --- 두 번째 신인 강준영이 같은 씬을 했다. 그의 손은 떨렸다. 그의 눈은 죽음 앞의 절망으로 가득했다. 그의 목소리는 부러진 기타 현처럼 울렸다. 그는 진짜 그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다음." 세 번째 신인도 비슷했다. 그의 눈물은 가짜였지만, 감정은 진짜인 것처럼 보였다. 준호는 한쪽 구석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은 무겁고, 가슴은 텅 빈 상태였다. 10년을 해도, 여전히 신인들에게 밀렸다. 여전히 그들이 더 나았다. 한지은이 옆에 앉았다. "너는... 정말 뭔가 다른 걸 하고 싶어?" 그 질문은 준호의 가슴을 찔렀다. 한지은도 알고 있었다. 준호가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단지 포기하지 않고 싶은 것뿐이라는 것을. "모르겠어." 준호가 답했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그럼 왜 계속 해?" "멈출 수 없어서." 한지은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 모든 신인의 촬영이 끝났을 때, 감독은 그의 옆 캐스팅 디렉터와 속삭였다. 준호는 그들의 입모양을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배우분들." 감독이 일어섰다. "내일 오전 10시에 최종 합격자를 공지하겠습니다." 준호는 스튜디오를 떠났다. 지하철에서, 지표면으로 올라왔을 때, 하늘은 여전히 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한지은이 옆에서 걸었다. "내일이야." 그녀가 말했다. "3개월까지 버텨야 돼."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것이 없었다. 그저 걸었다. 멈추지 말라는 명령에 따라,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발걸음은 무거웠다. 10년이 그렇게 무거운 것인지, 아니면 미래가 그렇게 무거운 것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