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 막내, 파산 전날로 돌아가 가족부터 지킨다휴대폰이 울렸다.
준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화면에 아버지의 이름이 떠 있었다. 부재중 전화 2개. 문자 메시지 1개.
시간은 5시 47분이었다.
해는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하늘은 검은색에서 남색으로 변하는 중간 색깔이었다.
메시지를 열었다.
[긴급. 회의실. 6시 45분. 반드시 참석할 것. - 아버지]
준호는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단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을 읽었다. 문장의 각 글자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인하려는 듯이.
6시 45분.
회의실.
전생에서는 7시였다.
15분이 당겨졌다.
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움직임이 느렸다.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10년의 기억은 정확했지만, 그 기억이 완벽하게 일치할 리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변수.
그것이 준호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이었다.
침실에서 옷장으로 향했다. 의복을 고르는 일은 중요했다. 회의실에 입장하는 순간, 그의 표정과 자세와 복장이 모든 것을 말할 것이었다. 과거의 준호는 이런 자리에서 무심했다. 무관심한 척 했다는 게 더 정확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다.
어두운 색의 정장을 골랐다. 검은색 슈트. 흰색 셔츠. 진회색 넥타이. 아버지가 선호하는 스타일이었다. 보수적이고, 신중하고, 신뢰할 수 있어 보이는 외형.
거울 앞에 섰다.
25세의 얼굴. 10년의 눈.
그는 넥타이를 매었다. 매듭을 조였다. 손이 떨렸다.
아니다. 떨리면 안 된다.
준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5초 동안 멈췄다. 5초 동안 내쉬었다.
그 동안 휴대폰이 또 울렸다.
큰형 이재훈이었다.
"형아."
준호가 먼저 말했다.
휴대폰 너머에서 이재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급했다.
"넌 일어났냐? 아버지가 긴급 회의 부르셨어. 6시 45분이야."
"알아. 방금 메시지 받았어."
"뭐가 뭔지 모르겠어. 어제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재훈의 말이 끝나기 전에 준호는 알고 있었다. 박은영의 최종 점검이 끝났다는 뜻이었다. 마지막 자금 이체. 마지막 서류 위조. 모든 것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것을 감지했거나, 누군가가 아버지에게 보고했거나, 아니면 정말로 우발적인 발견이었거나.
"형, 시간 있어? 지금?"
"지금? 아직 5시 50분인데?"
"내 방에 와. 5분이면 돼."
전화를 끊었다.
준호는 침실의 문을 열었다. 복도는 어두웠다. 집의 다른 부분들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2층 침실에 있을 것이고, 막내 민지는 자기 방에 있을 것이고, 둘째형 이수진은... 이수진은 아마도 아직 깨어 있을 것이다.
준호는 침실로 돌아갔다.
이재훈이 문을 두드렸다. 조심스럽게.
"들어와."
이재훈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얼굴이 창백했다. 밤을 새운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밤을 새웠을 가능성이 높았다. 후계자 전쟁의 한복판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뭐야? 이렇게 차려입고?"
이재훈의 시선이 준호의 정장을 훑었다.
"회의에 가는 거 아니야?"
"맞아. 형도."
"그래, 근데..."
이재훈이 말을 멈췄다. 준호를 더 자세히 바라봤다. 형의 눈이 뭔가를 찾고 있었다.
"어제는 아무것도 없었어. 아무것도. 그런데 갑자기?"
준호가 창문을 보며 말했다.
"박은영이야."
"박은영?"
"아버지가 뭔가 감지하신 거 같아. 정확히 뭔진 모르겠지만, 회의실에서 나올 거야."
이재훈이 침대에 앉았다. 그의 손이 떨렸다.
"넌 왜 알아?"
그 질문이 왔다. 준호는 그 질문이 올 거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예상과 현실은 다르다. 말로는 준비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준호는 이재훈을 마주봤다.
"형이 물어본 적 없잖아."
"뭘?"
"회사가 어떻게 되는지. 우리가 어떻게 되는지. 형은 항상 아버지의 결정을 따랐고,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나는..."
준호가 말을 멈췄다.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면 멈추기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다르게 생각했어."
이재훈은 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의심. 호기심. 두려움. 그리고 약간의 안도감.
"박은영이 뭐 했대?"
"자금을 빼돌렸어. 지난 3개월간. 계열사 자금을 개인 계좌로. 그리고 서류도 위조했어. 아버지가 감지하실 수밖에 없어."
이재훈이 일어섰다. 침실을 왕복하기 시작했다. 걸음이 빨랐다.
"그럼 아버지가 알고 계신 거야?"
"아직은 아닐 거 같아. 추측만 하고 계시는 것 같아. 그래서 회의를 부르신 거고."
"넌 뭘 할 거야?"
"회의실에서 직접 말할 거야."
이재훈이 멈췄다. 준호를 바라봤다.
"너? 임원진 앞에서?"
"응."
"넌... 아직 임원이 아닌데?"
"알아. 그래도 말할 거야."
이재훈의 얼굴이 변했다. 깨달음의 표정이었다. 준호가 이미 모든 것을 계획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확신이라는 것을.
"너 혼자 이거 다 알아낸 거야?"
"형이 도와줄 거야."
"뭘?"
"회의 중에 내가 말할 때, 형이 나를 지지해 줄 거야. 아버지가 혼란스러워하실 거고, 다른 임원진들도 의심할 거야. 그때 형이 내 말이 맞다고 확인해 주면..."
"그럼 아버지가 나를 믿으시겠네."
"응."
이재훈이 다시 침대에 앉았다. 이번엔 천천히. 마치 모든 일이 중력이 강한 세계로 옮겨진 것처럼.
"나한테는 말 안 했어? 어제는?"
준호가 창밖을 봤다. 하늘이 더 밝아지고 있었다. 검은색이 남색에서 회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어제는 몰랐어."
거짓이었다. 완벽한 거짓이었다. 10년 전에 안 것들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
하지만 이재훈은 믿었다.
"지금은 어떻게..."
"글쎄. 깨달았어."
그것도 거짓이 아니었다. 준호는 정말로 깨달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누구를 먼저 움직여야 하는지.
"회의실에서 넌 내 옆에 있어.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내가 말할 때까지."
"알았어."
이재훈이 일어섰다. 문을 열려다 멈췄다.
"준호."
"응?"
"넌 정말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25세 얼굴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10년의 경험. 25세의 몸.
그리고 단 몇 시간의 남은 시간.
"가능할 거야."
시계는 5시 5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준호는 정적 속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천천히, 일정하게. 심박을 낮추듯이. 거울 속의 자신은 차분했지만,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억누르고 있는 떨림이었다.
38층 회의실까지는 두 층 남았다.
그 시간 동안 준호는 다시 한 번 정보를 정렬했다. 박은영의 거래 흐름. 계열사 자금이 빠져나간 경로. 그리고 그 자금이 어디로 갔는지. 전생에서 수집했던 파편들이 지금 하나의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불완전하지만, 충분했다.
엘리베이터가 37층에 멈췄다.
문이 열렸고, 이수진이 들어섰다.
준호의 몸이 경직되었다. 의도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자연스럽게. 하지만 이수진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아침부터 바쁘네."
이수진의 목소리는 가볍게 들렸지만, 그 뒤에는 계산이 있었다. 준호는 안다.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것들을 의심하는지.
"아버지 소환이 갑자기 들어왔어."
"그래, 들었어. 어제는 없던 회의인데."
이수진이 엘리베이터 벽에 기댔다. 정장의 주름이 없었다. 새벽부터 깨어 있었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자지 않았거나. 준호는 이수진의 얼굴을 관찰했다.
눈 밑의 그림자. 입꼬리의 긴장감. 그리고 그 긴장감을 감싸고 있는 자신감.
이수진도 뭔가를 알고 있었다.
"오빠는?"
"나도 방금 깼어. 휴대폰 울려서."
거짓이었다. 준호는 이미 1시간 전부터 깨어 있었다. 하지만 이수진은 그것을 검증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이것도 거짓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것이 완벽한 거짓의 조건이었다. 확인 불가능성.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였다. 36층.
"아버지가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긴급이라고."
"......"
이수진이 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호기심이 아니라 경계가 있었다. 형이자 경쟁자로서의 경계. 준호는 그것을 느꼈고, 그것을 느꼈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너, 어제 뭐 했어?"
"뭐 하긴. 집에 있었지."
"혼자?"
"응."
준호는 창을 봤다. 서울의 아침이 빠르게 밝아지고 있었다. 건물들의 윤곽이 선명해지고, 사람들이 거리에 나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준호에게는 마지막 하루였다.
24시간.
그 안에 모든 것이 바뀌거나, 아무것도 바뀌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근데 이상한 게 뭐냐면."
이수진이 다시 말했다.
"어제 아버지가 밤 11시쯤 경영진 몇 명한테 전화했어. 기밀 자료 검토하라고. 넌 그 전화 안 받았지?"
준호의 심장이 한 박자 빨라졌다. 하지만 얼굴은 움직이지 않았다.
"받지 않았어."
"그럼 이재훈이는?"
"몰라. 오빠한테 물어봐."
"......"
이수진이 웃었다. 짧고, 차가운 웃음이었다.
"뭐야. 너 어제부터 이상해. 진짜로."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엘리베이터가 38층에 멈췄다. 문이 열렸다.
복도는 조용했다. 이른 아침이었고, 일반 직원들은 아직 오지 않았다. 복도의 끝에는 회의실로 향하는 복도가 있었다. 그 길을 준호와 이수진이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재훈이 복도 모서리에서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정확히는 창백함을 억누르려고 애쓰고 있었다. 입술의 색깔이 빠져 있었고,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밤을 새웠거나, 충격을 받았거나, 둘 다이거나.
"아, 준호."
이재훈이 준호를 봤다. 그 눈에는 뭔가가 있었다. 확인. 혹은 안심. 준호가 여기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오빠."
"응. 아, 이수진이도 왔네."
이재훈이 이수진을 봤다. 그 순간 그의 표정이 굳었다. 극도로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이수진은 그것을 보고 눈을 좁혔다.
"뭐야. 두 사람이 뭔가 있는 거야?"
"없는데?"
이재훈이 부자연스럽게 웃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수진은 이미 다 알아챘을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뭔가가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아버지가 먼저 오셨어?"
준호가 물었다.
"응. 10분 전에. 혼자 사무실에 들어가셨어. 그리고..."
이재훈이 말을 멈췄다. 이수진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박은영이 안 왔어. 아직. 호출했는데 연락이 없대."
준호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박은영은 지금 집에 있을 것이다. 자신의 거래를 최종 정리하거나, 혹은 도망 준비를 하거나. 하지만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그럼 삼촌은?"
"이미 왔어. 회의실에."
회의실로 가는 문이 보였다. 유리로 된 회의실 문. 그 안에는 이미 몇 사람이 앉아 있었다. 준호의 아버지. 그리고 삼촌 이준석. 그리고 또 다른 임원진 몇 명.
그들의 표정들이 보였다.
이강호는 책상에 팔을 얹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그 창백함 속에는 분노와 불안이 섞여 있었다. 심장 약해진 남자의 표정이었다. 준호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밤새 뭔가를 확인했다는 것을.
이준석은 창을 보고 있었다. 준호는 그 뒤태만으로도 그의 불안을 느낄 수 있었다. 계획이 틀어졌다는 불안. 혹은 최악의 상황을 예감하는 불안.
준호의 발걸음이 멈춰졌다.
이수진이 옆에서 준호를 바라봤다.
"너. 뭔가 알고 있지?"
"뭘?"
"아버지가 왜 회의를 소집했는지. 넌 알고 있어."
완벽한 질문이었다. 완벽한 의심이었다. 준호는 그것을 정면으로 받을 수 없었다.
"모르지. 너처럼."
"거짓말."
이수진이 가까워졌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는 확신이 있었다.
"너 어제 뭘 한 거야? 정말로. 우리한테 숨기는 게 뭐야?"
준호는 이수진의 눈을 봤다. 그 눈 속에는 의심과 함께 또 다른 것이 있었다. 준호와 비슷한 무언가. 형으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가족을 지키고 싶은 욕망.
전생에서는 이수진이 그 욕망을 포기했었다. 야심이 더 컸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직 그 순간이 아니었다.
"회의실로 가자."
준호가 말했다.
"다 밝혀질 거야."
이수진이 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 속에서 계산이 일어났다. 공격할 것인가, 따를 것인가. 확인할 것인가, 기다릴 것인가.
결국 이수진이 한 발 물러섰다.
"알겠어. 봅시다. 뭐가 나올지."
회의실 문이 가까워졌다. 준호의 손이 문 손잡이에 닿았다. 그 순간, 이재훈이 준호의 팔을 잡았다.
아주 살짝.
그것은 응원이었을까, 아니면 마지막 경고였을까.
준호는 문을 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