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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무명 헌터, 망해가는 길드를 인수하다

3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은 생각보다 가팔랐다. 준호는 한 손으로 낡은 난간을 잡으며 발을 옮겼다. 형광등이 하나 꺼져 있었고, 나머지 하나가 불규칙한 깜빡임으로 어둠을 조명했다. 냄새가 먼저 닿았다. 곰팡이와 땀, 그리고 무언가 타버린 냄새의 혼합. 10년 전에 이 장소를 본 준호에게도 낯선 악취였다. 지하실 문이 열렸다. 세 개의 침대, 하나의 식탁, 녹슨 수도관이 천장을 따라 뻗어 있었다. 그리고 세 명의 헌터가 준호를 바라봤다. "길드장님?" 먼저 입을 연 것은 가장 젊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25세 정도로 추정되는 얼굴에 C급 헌터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이력서에서 본 박지은이었다. 그 옆에는 30대 중반의 남성이 앉아 있었다. 김수호. D급 헌터. 팔찌가 흐릿했고, 마모 정도로 봐서 오래된 것이었다. 그는 준호를 바라보는 시선이 경계로 가득 차 있었다. 세 번째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임준혁. 22세. 공식 등급 E급. 팔찌가 없었다. 아직 첫 의뢰를 완료하지 못한 신입이었다. "정혜진 길드장은?" 박지은이 다시 물었다. 목소리는 가늘었지만 떨리지 않았다. 그 대신 눈빛에 불안감이 선명했다. "더 이상 이 길드의 길드장이 아니다." 준호는 인감을 책상 위에 내려놨다. 플라스틱 케이스에 들어 있던 도장이 바닥에 부딪혀 작은 음을 냈다. 김수호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움직임이 빨랐다. 전투 경험이 있는 사람의 반사 작용이었다. "뭐 하는 거야? 정혜진이 길드를 팔았다고? 누구한테?" "나다." 준호는 인감을 집어 들었다. 도장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혹은 그것이 상징하는 무게가 컸을 것이다. 한 조직의 통제권. 세 명의 인간. "증거를 보고 싶으면 2층 사무실로 올라와라." 준호는 돌아섰다. "잠깐, 당신 누구야?" 임준혁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목소리에는 불같은 에너지가 있었다. 가장 약한 자가 가장 크게 외쳤다. 준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가며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임준혁의 목소리는 계속 따라왔다. "당신이 뭔지 모르겠지만, 이 길드는 우리 것이야! 정혜진 언니가 팔 수 없어! 이 길드는—" 문이 닫혔다. 2층 사무실로 올라간 준호는 책상 앞에 앉았다. 계약서와 재무 현황표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는 인감을 정확한 위치에 놓았다. 발걸음이 들렸다. 세 명이 한꺼번에 올라온 것이었다. 계단을 밟는 소리가 불규칙했다. 가장 마지막이 임준혁일 것이다. 사무실 문이 열렸다. "이게 뭐야? 왜 계약서가—" 박지은이 말을 멈췄다. 그녀의 눈이 서류를 따라 움직였다. 인감. 정혜진의 서명. 그리고 낮게 인쇄된 글자들. '신월 길드 인수 양수도 계약서' '인수인: 이준호' 김수호가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웃음이라기보다 동물이 내는 울음에 가까웠다. "미쳤네. 정혜진이 정말 팔았다고?" "한 달 전에 이미 파산 신청을 준비했다고 했잖아." 준호는 차분하게 말했다. 감정을 싣지 않은 음성. 사실만을 배열한 문장. "당신이 누구냐고 물어봤어." 임준혁이 책상에 손을 내려쳤다. 소리가 컸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떨고 있었다. 준호는 임준혁을 바라봤다. 22세의 얼굴. 아래턱이 불규칙적으로 움직였다. 분노보다는 공포였다. "이준호다. 이제 너희의 길드장이다." "F급?" 박지은이 속삭였다. 그것은 질문이라기보다 확인이었다. 그녀의 눈이 준호를 훑고 있었다. C급 헌터의 경험 많은 눈이었다. 그 눈이 본 것은 약한 신입이었을 것이다. "F급이 맞다." 준호는 서류를 넘겼다. 박지은이 받아 들었다. "당신들은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 지금 이 길드를 나간다. 정혜진 전 길드장에게 연락해서 별도의 보상을 요청할 수도 있다. 그것은 너희의 권리다. 둘째, 남아서 내 지시를 따른다. 셋째는 없다." 임준혁이 다시 말했다. "F급이 C급을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해? 이건 미친 짓이야. 정혜진이 미쳤거나, 당신이 돈을 주고 산 거야. 어느 쪽이든, 이건 작동하지 않을 거야."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일반적인 헌터 조직에서는 불가능했다. 등급이 낮은 자가 높은 자를 지휘할 수는 없다. 그것은 협회의 규칙이자, 헌터 사회의 관례였다. 하지만 준호는 그 규칙이 왜 생겼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C급이 되면 된다." 준호는 다시 말했다. "뭐?" 박지은이 눈을 깜빡였다. "한 달 안에 나는 C급이 된다. 이 길드도 최소 B급 이상으로 상승한다. 그때까지 넌 내 지시를 따르면 된다. 그 대신 너희는 현재보다 훨씬 높은 보상을 받을 것이다." 임준혁이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웃음이었다. 광기에 찬 웃음. "F급이 한 달 만에 C급? 이건 농담이 아니라 정신 이상이야." "그렇다면 나간다." 준호는 손가락을 책상 위에 놨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손가락은 가장 약한 자가 가장 먼저 도망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수호가 임준혁의 팔을 잡았다. "준혁아, 잠깐." "뭐?" "일단 말을 끝내고 나가자." 김수호의 얼굴을 보니, 그가 뭔가 계산하고 있었다. 30대 중반의 D급 헌터. 오래된 팔찌. 그리고 지하실에서 산 자의 눈빛. 그는 준호의 말이 진짜일 가능성을 계산하고 있었다. "넌 뭐 하는 사람이야? 진짜로." 박지은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낮아져 있었다. 준호는 한 장의 서류를 더 꺼냈다. 협회에서 받은 신입 길드장 교육 자료였다. 그 위에는 협회 공식 인감이 찍혀 있었다. 박지은이 서류를 받아 들었다. 그녀의 눈이 읽기 시작했다. "신입 길드장 수당... 협회 포인트 5% 보정... 우선 의뢰 배치..." "협회가 신입 길드장에게 제공하는 혜택이 있다. 그 혜택을 사용해서 이 길드를 살릴 거다." 준호는 박지은을 바라봤다. C급 헌터. 가장 냉정해 보이는 자. "당신은 내 지시를 따를 건가?" 박지은이 서류를 내려놨다. 그리고 웃었다. 그것은 짧은 웃음이었고, 비극적인 웃음이었다. "이 길드를 떠날 곳이 없어요." 그것이 답이었다. 임준혁은 여전히 저항했지만, 김수호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결국 세 명 모두 남기로 했다. 준호는 그들을 바라봤다. 약한 자들. 하지만 그들은 지금 10년을 안다는 한 명의 남자를 따르게 되었다. "내일부터 시작한다." 준호는 인감을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웃음이 나왔다. 얼굴에 드러나지 않는 웃음이었다. 내부에만 존재하는 웃음. "5천만 원을 모으기 위해." 협회 중앙 데이터베이스 접근 권한은 신입 길드장 자격으로 자동 부여되었다. 준호는 신월 길드 사무실의 낡은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들었다. 화면에 떠오른 것은 협회 공식 의뢰 풀이었다. E등급부터 S등급까지. 각 난이도별로 현재 배정되지 않은 의뢰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보상액, 예상 소요 시간, 의뢰처, 난이도 지수.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었다. 준호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마우스 휠을 내렸다. 스크롤. 스크롤. 스크롤. 페이지를 넘기며 그는 패턴을 찾기 시작했다. E등급 의뢰 하나: "폐가 정화 작업 — 보상 300만 원, 예상 소요 시간 8시간, 난이도 지수 1.2" D등급 의뢰 하나: "소형 던전 입구 봉쇄 — 보상 800만 원, 예상 소요 시간 12시간, 난이도 지수 2.1" C등급 의뢰 하나: "중형 던전 클리어 — 보상 2,500만 원, 예상 소요 시간 24시간, 난이도 지수 3.8" 준호는 노트를 펼쳤다. 정보를 기입하기 시작했다. 손으로. 컴퓨터가 아닌 수기로. 협회 시스템은 모든 의뢰 기록을 저장하고 모니터링했다. 검색 기록, 열람 기록, 다운로드 기록. 전부 남았다. 그러니 최소한 처음부터는 손으로 기록하는 게 낫다. "뭐 하는 거야?" 목소리가 들렸다. 준호는 펜을 멈추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박지은의 목소리였다. "자료 정리." "저희가 도와드릴까요?" "하지 말아라. 이건 길드 전략에 관한 것이다. 외부 유출은 위험하다." 박지은은 말 없이 물러났다. 준호는 다시 의뢰 풀로 돌아갔다. 한 시간이 지났다. 노트에는 200개 이상의 의뢰 정보가 기입되어 있었다. 난이도, 보상액, 예상 소요 시간. 그리고 그것들의 비율. 보상액 ÷ 예상 소요 시간 = 시간당 보상액 E등급: 평균 37.5만 원/시간 D등급: 평균 66.6만 원/시간 C등급: 평균 104.1만 원/시간 단순한 수치였다. 난이도가 높을수록 시간당 보상이 많다. 당연한 논리였다. 하지만 문제는 협회 포인트였다. 협회 포인트 = 의뢰 난이도 × 완료율 × 시간 효율 협회는 이 공식을 공개했지만, 각 변수가 어떻게 계산되는지는 명확히 공개하지 않았다. 그것이 핵심이었다. 준호는 다시 의뢰 기록 섹션으로 들어갔다. 신월 길드의 과거 기록을 보기 위해서였다. 과거 3개월간의 기록이 남아 있었다. 정혜진 시대의 신월 길드 기록. 의뢰 1: "폐가 정화 작업" — 난이도 1.2, 완료율 100%, 예상 8시간, 실제 소요 7시간 50분 획득 포인트: 8.4 의뢰 2: "소형 던전 입구 봉쇄" — 난이도 2.1, 완료율 100%, 예상 12시간, 실제 소요 11시간 30분 획득 포인트: 24.3 의뢰 3: "중형 던전 클리어" — 난이도 3.8, 완료율 100%, 예상 24시간, 실제 소요 23시간 15분 획득 포인트: 95.2 준호는 펜을 들었다. 계산을 시작했다. 의뢰 1: 난이도(1.2) × 완료율(1.0) × ? = 8.4 → 1.2 × 1.0 × ? = 8.4 → ? = 7 의뢰 2: 난이도(2.1) × 완료율(1.0) × ? = 24.3 → 2.1 × 1.0 × ? = 24.3 → ? = 11.57 의뢰 3: 난이도(3.8) × 완료율(1.0) × ? = 95.2 → 3.8 × 1.0 × ? = 95.2 → ? = 25.05 손가락이 멈췄다. '시간 효율'이 일정하지 않다. 의뢰 1: 예상 8시간, 실제 7시간 50분 → 예상 대비 98.95% 의뢰 2: 예상 12시간, 실제 11시간 30분 → 예상 대비 95.83% 의뢰 3: 예상 24시간, 실제 23시간 15분 → 예상 대비 96.88% 시간 효율은 예상 시간 대비 실제 소요 시간의 비율이었다. 모두 90~100% 사이인데, 그것이 그대로 포인트 계산에 반영되면 이렇게 커야 한다: 의뢰 1: 1.2 × 1.0 × 0.9895 = 1.19 의뢰 2: 2.1 × 1.0 × 0.9583 = 2.01 의뢰 3: 3.8 × 1.0 × 0.9688 = 3.68 하지만 실제 포인트는 8.4, 24.3, 95.2였다. 훨씬 컸다. '시간 효율 계산이 다르다.' 준호는 다시 계산을 시작했다. 이번엔 역으로. 의뢰 1: 1.2 × 1.0 × (포인트/난이도/완료율) = 8.4 → 포인트/난이도/완료율 = 7.0 → 시간 효율 지수 = 7.0 예상 8시간, 실제 7시간 50분... 아. 준호의 눈이 반짝였다. '시간 효율이 (예상 시간 / 실제 소요 시간)일 수도 있다.' 의뢰 1: 8 / 7.833... = 1.021 의뢰 2: 12 / 11.5 = 1.043 의뢰 3: 24 / 23.25 = 1.032 그리고 그것에 다른 계수를 곱하면: 의뢰 1: 1.2 × 1.0 × 1.021 × (?) = 8.4 → ? = 6.87 의뢰 2: 2.1 × 1.0 × 1.043 × (?) = 24.3 → ? = 11.14 의뢰 3: 3.8 × 1.0 × 1.032 × (?) = 95.2 → ? = 24.28 여전히 일정하지 않다. 준호는 노트를 넘겼다. 더 많은 기록을 찾기 위해. 3개월 전의 기록들을 스크롤했다.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했다. 더 많은 샘플이 필요했다. 밤이 깊었다. 사무실의 불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깨어 계신 거 봐요."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키가 중간 정도인 남자. 약 45세. 검은 안경. 신월 길드의 회계사였다. 김태현. "의뢰 기록이 필요했다." "그런 줄 알았어요." 김태현은 책상 옆에 서 있었다. 준호는 그를 바라봤다. 처음 만난 게 아니었다. 신월 길드 인수 서류를 작성할 때 만났던 인물이었다. 정혜진 시대부터 이곳의 회계를 담당해온 사람. "포인트 계산을 역산하시는 중이신 것 같네요." 준호의 손가락이 멈췄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길드장님이 협회에서 제공한 정보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 거예요. 의뢰 기록과 포인트를 함께 보고 있으면, 그건 하나의 수식을 푸는 것과 같거든요." 김태현이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조소가 아닌 동료의식이었다. "저도 해봤어요. 3년 전부터."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 못 찾았어요. 협회 시스템이 생각보다 복잡하니까요. 하지만 길드장님 같은 사람이 이 길드를 받으면, 언젠가는 찾아낼 거라고 생각했어요." "왜 도와주려고 하지?" "신월이 살아날 가능성이 생겼으니까요." 김태현은 책상 위에 놓인 노트를 가볍게 톡 쳤다. "제가 가져온 자료가 있습니다. 상위 10개 길드의 지난 1년 기록. 제 개인 자료예요. 협회 접근 권한으로 수집한 건 아니고, 공개된 기록들을 수집한 거라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USB를 내밀었다. "이걸 보면, 포인트 계산의 패턴이 좀 더 명확해질 거 같아요." 준호는 USB를 받았다. 손가락 사이에서 무게를 느껴봤다. "왜 나를 도와주지?" "이전 길드장은... 신월을 포기했거든요." 김태현의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그 안에는 무언가 단단한 것이 들어 있었다. "당신은 다를 거라는 직감이 들었어요. 그게 전부입니다." 준호는 노트북에 USB를 꽂았다. 파일이 열렸다. 상위 10개 길드의 기록들. 천정 길드, 창천 길드, 아틀란 길드. 그들의 의뢰 기록과 획득 포인트. 매우 많은 데이터였다. "당신의 이름은?" "김태현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신월을 위해 몇 년을 기다렸다?" "3년입니다." 준호는 화면을 본다. 데이터 위에 떠있는 수백 개의 의뢰 기록들. "이제부터는 우리가 함께다." 준호의 말에 김태현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밤은 계속되었다. 노트북의 화면은 밝았다. 준호와 김태현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데이터를 입력하고, 계산하고, 패턴을 찾았다. 새벽 4시. 준호의 눈이 것을 발견했다. "여기 봐." 화면 위에는 천정 길드의 지난 3개월 기록이 떠 있었다. 의뢰 난이도는 C등급부터 B등급. 높은 난이도들이었다. 하지만 포인트 증가율은 생각보다 낮았다. 반대로 창천 길드의 기록을 보면. E등급과 D등급 의뢰를 집중적으로 했다. 낮은 난이도. 하지만 포인트 증가율은 천정 길드와 비슷했다. "저난이도를 빠르게 반복한다?" 김태현이 중얼거렸다. "시간 효율이 높을수록 포인트 증가량이 크다는 건가요?" 준호는 계산기를 들었다. 다시 역산을 시작했다. "아니다. 그것도 아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포인트 계산에서 '시간 효율'의 가중치가... 생각보다 크다." 준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것은 확신의 목소리였다. "난이도보다 훨씬 크다." 새벽빛이 사무실의 창문을 밝혔다. 밤은 끝났다. 하지만 준호의 계산은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 가설이 아닌 추측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추측은 곧 실증으로 바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