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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무명 헌터, 망해가는 길드를 인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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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상황 파악 협회 본부 지하 1층의 열람실은 회색 형광등 아래 공기가 정체되어 있었다. 준호는 터미널 앞에 앉았다. 공용 단말기.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헌터 라이센스 확인 시스템. 화면을 켰다. 로그인 창이 떴다. 사용자명: 이준호 라이센스: F-2013-118564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10년 전 자신의 라이센스 번호를 기억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을까. 하지만 준호는 이미 더 이상한 일들을 견뎌냈다. 자신이 죽었다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비하면, 라이센스 번호 하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엔터를 눌렀다. 시스템이 응답했다. **[헌터 라이센스: 이준호 (F등급)]** **[협회 등록일: 2013년 11월 24일]** **[누적 의뢰 완료: 0건]** **[현재 상태: 활성]** 준호는 숨을 내쉬었다. 0건. 맞다. 오늘이 등록일이었다. 정확히는 2시간 전이었다. 키보드를 다시 움직였다. 열람실의 공용 단말기는 기본적인 정보만 제공했다. 하지만 충분했다. 준호가 필요한 것은 기본 정보였다. 상위 길드들의 움직임. 협회의 공식 랭킹. 가장 중요하게는, 최민준이 있는 천정 길드의 위치. 협회 길드 검색 시스템을 열었다. **[길드명: 천정(天定)]** **[등급: S]** **[길드장: 최민준]** **[평균 멤버 등급: A-]** **[누적 포인트: 847,300]** **[현재 순위: 1위]** 1위. 맞다. 준호의 기억에서 천정은 항상 1위였다. 적어도 지난 2년간은. 그들이 어떻게 1위를 유지했는지, 준호는 알고 있었다. 고난이도 의뢰 중심의 보수적 전략. 멤버들의 절대적 강함. 그리고 협회와의 은밀한 관계. 준호는 화면을 스크롤했다. 상위 10개 길드들이 나열되었다. 2위: 황제 길드 (누적 포인트: 823,100) 3위: 북극성 길드 (누적 포인트: 798,400) 4위: 드래곤 슬레이어 (누적 포인트: 776,800) 5위: 신성 길드 (누적 포인트: 754,200) 준호의 눈이 리스트를 훑었다. 신월 길드는 보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신월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정혜진의 파산 길드는 아직 살아있었고, 랭킹에서도 밀려나 있었다. 키보드를 다시 두드렸다. 길드명 검색 창에 '신월'을 입력했다. **[길드명: 신월(新月)]** **[등급: E]** **[길드장: 정혜진]** **[평균 멤버 등급: F]** **[누적 포인트: 12,400]** **[현재 순위: 2,847위]** 2,847위. 그 숫자가 담긴 무게를 준호는 느꼈다. 신월은 거의 죽어가는 길드였다. 포인트는 거의 없었고, 멤버는 최소한 유지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좀비처럼 돌아다니는 것과 같았다. 정혜진은 이 길드를 살리기 위해 발버둥쳤을 것이다. 10년 전 준호가 겪었던 것처럼.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준호는 다른 정보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지난 6개월간 상위 길드들의 의뢰 기록. 포인트 증감 추이. 멤버 승격 현황. 공개된 정보들이었지만, 대부분의 헌터들은 이렇게 세밀하게 분석하지 않았다. 천정 길드의 최근 3개월 의뢰 기록이 화면에 떴다. **[의뢰 이력]** **11월 20일: S등급 던전 '황금의 탑' - 완료 (포인트: +8,500)** **11월 18일: A등급 던전 '용암 협곡' - 완료 (포인트: +4,200)** **11월 15일: S등급 던전 '침묵의 숲' - 완료 (포인트: +8,200)** 준호의 눈이 좁혀졌다. 포인트 계산이 일정하지 않았다. 같은 S등급이어도 8,500과 8,200. 그 차이는 뭐였을까. 완료 시간인가. 멤버 손상도인가. 아니면 다른 변수인가. 준호는 더 많은 길드들의 기록을 검색했다. 황제 길드, 북극성 길드, 드래곤 슬레이어. 패턴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고난이도 의뢰 + 느린 완료 = 높은 포인트 저난이도 의뢰 + 빠른 완료 = 낮은 포인트 그렇다면 역은 어떻게 될까? 저난이도 의뢰 + 매우 빠른 완료 = ? 준호는 더 세부적인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완료 시간. 의뢰 등급. 멤버 구성. 하지만 공용 터미널에서는 그 정도의 세부 정보는 제공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준호는 터미널을 나왔다. 열람실 밖의 복도로 나가자, 협회 직원들이 오갔다. 준호는 그들 중 한 명을 찾고 있었다. 정보 담당자. 혹은 데이터 분석팀. 누군가는 이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의뢰 기록을 정리하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직접 접근하는 것은 위험했다. F급 헌터가 갑자기 포인트 계산 공식에 대해 물으면, 의심을 사기 쉬웠다. 준호는 복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10년 전, 신월 길드를 인수받은 이후, 어떻게 정보를 모았었는가. 그때는 박서연이 있었다. 박서연. 전직 A급 헌터. 현실적이고 실행력 있는 여자. 그녀는 준호가 신월을 인수받은 지 2주일 후에 들어왔었다. 준호가 광고를 냈던 것이 아니라, 그녀가 스스로 찾아왔었다. 왜였는가? 준호는 그 부분을 명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10년의 시간이 기억을 흐릿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박서연은 준호를 믿었다. 단 2주일의 짧은 만남 후에도. 지금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준호는 협회 건물의 전자 게시판을 찾았다. 헌터 등록 정보 검색 터미널. 그곳에서 박서연을 검색할 수 있을 것이었다. 사용자명을 입력했다: 박서연 결과가 떴다. **[헌터명: 박서연]** **[등급: A]** **[소속 길드: 천정(天定)]** **[협회 등록일: 2010년 7월 15일]** 준호의 손가락이 멈췄다. 박서연이 천정 길드에 있었다. 지금. 이 시점에. 준호의 10년 기억에서, 박서연이 천정에 들어간 것은 훨씬 나중이었다. 신월이 충분히 강해진 이후, 그리고 준호가 그녀에게 그곳을 떠나도록 설득한 이후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박서연은 아직도 천정에 있었다. 즉, 아직 신월과 만난 적이 없었다. 준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계산이 복잡해졌다. 박서연을 설득하려면 신월이 먼저 성장해야 했다. 하지만 신월을 성장시키려면 박서연의 능력이 필요했다. 악순환이었다. 아니, 아니었다. 준호는 다시 생각했다. 10년 전 신월에 들어온 초기 멤버들은 누구였는가? 박서연 이전에, 신월은 누구로 구성되어 있었는가? 기억을 더듬었다. 처음에는 정혜진, 그리고 두 명의 C급 헌터.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충분하지 않았다. 너무 약했다. 준호는 터미널을 떠났다. 열람실로 다시 돌아갔다. 공용 단말기 앞에 앉았다. 이번엔 다른 정보를 검색했다. 신입 헌터들의 기록. 아직 길드에 들어가지 않은, 개인으로 활동 중인 헌터들. 특히 재능 있지만 아직 발굴되지 않은 신입들. 데이터베이스는 방대했다. 서울 지역만 해도 수천 명의 신입 헌터들이 등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준호는 찾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다. 한지은. 당시 16살 신입 헌터. 재능 있지만 가난해서 제대로 된 길드의 눈에 띄지 못한 아이. 검색했다. 결과 없음. 준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한지은이 아직 헌터가 아니었다는 뜻이었다. 등록 날짜가 아직 오지 않았거나, 혹은 다른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었거나. 준호는 다른 방식으로 검색했다. 나이, 성별, 소재지. 가능한 모든 변수를 조합했다. 그리고 찾았다. **[헌터명: 한지은]** **[등급: F]** **[협회 등록일: 2013년 10월 11일]** **[현재 상태: 비활성]** 비활성. 준호는 그 단어를 읽었다. 한지은은 등록만 했을 뿐, 아직 의뢰를 받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길드에 들어가지도 않았다는 뜻이었다. 준호는 화면 앞에서 생각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는가. 한지은을 발굴해서 신월에 들여보내기까지, 그리고 그녀가 충분한 전력이 될 때까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었다. 협회 데이터베이스에서 보이는 이 정보들은 정말로 정확한가? 준호는 다시 한번 최민준의 정보를 검색했다. **[헌터명: 최민준]** **[등급: S]** **[소속 길드: 천정(天定)]** **[협회 등록일: 2009년 3월 20일]** S등급. 협회 공식 데이터에서 최민준은 S등급 헌터였다. 하지만 준호의 기억에서, 최민준은 실제로는 더 강했다. 협회 공식 등급 시스템이 모든 것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정보들은 어떨까? 준호는 천정 길드의 멤버 구성을 다시 확인했다. 15명. 모두 A등급 이상. 평균 등급 A-. 10년 전 기억에서, 천정은 더 많은 멤버를 가지고 있었다. 25명 이상. 그렇다면 이 10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아니면 협회 데이터베이스가 공개하는 정보가 항상 최신이 아닌가? 준호는 협회의 공식 공지사항을 찾았다. 길드 정보 업데이트 주기는 월 1회였다. 즉, 현재 보이는 정보는 11월 초의 정보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천정 길드의 실제 상태는 다를 수 있었다. 준호는 터미널을 떠났다. 이 정도의 정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협회 데이터베이스는 공개 정보일 뿐이었다. 진짜 답은 다른 곳에 있었다. 열람실을 나갔다. 협회 본부의 2층으로 올라갔다. 인사 부서와 재정 부서가 있는 곳이었다. 그곳의 어딘가에, 더 정밀한 데이터가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F급 헌터가 그곳에 직접 들어갈 수는 없었다. 준호는 다시 생각했다. 협회의 구조. 그들의 관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누군가 정보를 원하는 헌터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했다. 돈. 혹은 빚. 협회는 돈으로 움직였다. 협회의 직원들도 돈으로 움직였다. 정보를 가진 누군가에게 접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준호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천 원짜리 동전들. F급 라이센스. 돈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하게는, 10년의 기억이 있었다. 준호는 협회 본부를 나왔다. 햇빛이 얼굴을 쬐었다. 오후 2시쯤이었다. 남은 시간은 충분했다. 신월로 향할 시간이었다. 신월 길드는 강남의 뒷골목에 있었다. 협회 본부에서 지하철을 갈아타며 30분을 달렸다. 준호는 핸드폰 지도로 길을 확인했다. 최신 스마트폰이 아니었다. 2013년식 스마트폰이었다. 화면은 작았고, 배터리는 빨리 닳았지만, 지도 애플리케이션은 작동했다. 신월 길드 건물 앞에 섰을 때, 준호는 이 장소를 기억했다. 회귀 전. 2023년. 그때 신월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폐건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살아 있었다. 간판이 달려 있었다. 글씨가 벗겨져 있었지만, '신월'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건물은 4층짜리 오피스 건물이었다. 1층에는 편의점이 있었고, 신월 길드는 2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준호는 계단을 올랐다. 2층에는 유리문이 있었다. 문을 열자 냉기가 흘러나왔다. 에어컨 실외기의 음성이 들렸다. 천장형 냉방이었다.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신월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를 보여주는 신호였다. 에어컨을 끄면 조금이나마 전기료를 아낄 수 있을 테니까. 사무실 내부는 생각했던 것보다 정돈되어 있었다. 접수 데스크가 있었다. 그 뒤로 세 개의 개인 책상이 보였다. 왼쪽 벽에는 갑옷과 무기를 보관하는 로커가 있었다. 가운데에는 회의용 테이블이 있었다. 오른쪽 끝에는 작은 사무실 문이 보였다. 그곳이 길드장실일 것이었다. "어서오세요." 목소리가 들렸다. 한 여성이 접수 데스크에서 일어났다. 30대 후반이었다.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정장의 어깨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다. 이 곳의 경영 상태를 나타내는 또 다른 신호였다. "길드장님을 찾으신가요?"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호라고 합니다. 예약은 없는데, 잠깐 시간을 낼 수 있을까요?" 여성의 눈빛이 변했다. 순간적인 경계. 그 다음 희미한 기대. F급 헌터라는 것을 보고 경계를 풀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잠깐만요. 확인해보겠습니다." 여성은 오른쪽의 사무실 문을 노크했다. 몇 초 후, 문이 열렸다. 정혜진이었다. 회귀 전의 기억 속에서, 준호는 정혜진을 본 적이 있었다. 2023년의 신월 자료실에서. 그때 정혜진은 더 이상 길드장이 아니었다. 그녀는 협회에 신월의 해산을 신고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2013년의 정혜진은 여전히 길드장이었다. 그녀는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길고 검은 머리를 뒤로 묶고 있었다. 얼굴은 피곤해 보였다. 눈 아래의 다크서클이 깊었다. 하지만 눈 자체는 여전히 예리했다. 한때 A급 헌터였던 사람의 눈이었다. 그녀는 준호를 스캔했다. "F급이군요. 무슨 일인가요?"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상대를 품평하는 톤이었다. "신월 길드에 관심이 있습니다." 준호가 말했다. 정혜진의 눈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관심.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무실로 들어오세요." 정혜진이 돌아섰다. 준호는 뒤를 따랐다. 사무실은 생각보다 넓었다. 하지만 비어 있었다. 책상 위에는 서류가 쌓여 있었다. 그 서류들의 색깔은 다양했다. 협회 공식 문서의 흰색, 은행 통장의 녹색, 채권자들의 편지들. 정혜진은 책상 뒤의 의자에 앉았다. 준호에게 마주보는 의자를 손짓으로 지시했다. "이름은?" "이준호입니다." "어느 길드 소속인가요?" "없습니다. 독립 헌터입니다." 정혜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신월에 관심이 있다니, 재미있네요. 우리 길드를 알고 계신가요?" "네. 협회 데이터베이스에서 봤습니다." "아, 그러면 알겠네요. 우리 길드가 몇 위인지." 정혜진이 몸을 뒤로 젖혔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2,847위입니다." 준호가 정확한 숫자를 말했다. 정혜진의 눈이 반짝였다. 그것은 자조적인 빛이었다. "정확하네요. 그 정도면 충분히 낮은 순위죠. 왜 이런 길드에 관심을 가져요?" 준호는 잠깐 말을 멈추고 정혜진을 관찰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의 길드가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자신이 왜 왔는지도. "인수하려고 합니다." 준호가 직설적으로 말했다. 정혜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진정한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절망이 섞여 있었다. "F급 독립 헌터가? 길드를 인수하려고?" "네." 정혜진은 계속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멈추었다. 그녀의 눈이 준호를 다시 스캔했다. 이번에는 다르게. "당신, 정신이 멀쩡한가요?" "네." "길드를 운영해본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그런데 인수를 원해요?" "네." 정혜진은 책상 위의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채권자의 편지였다. "우리 길드는 지금 3억 5천만 원의 빚이 있습니다. 의뢰 수익으로는 월 500만 원 정도밖에 못 벌어요. 이자만 해도 월 2천만 원입니다. 6개월 안에 회생 불가능 상태가 됩니다. 당신이 이 정도를 감당할 수 있나요?" 준호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얼마를 원하십니까?" "뭐라고요?" "길드 인수가에 얼마를 원하십니까?" 정혜진의 얼굴이 변했다. 그 순간, 그녀는 이 F급 헌터가 진지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좋아요. 그럼 현실적으로 이야기합시다." 정혜진이 책상을 정리했다. 서류들을 밀어내고, 새로운 종이를 꺼냈다. 그것은 신월 길드의 재무 현황표였다. "현재 자산가치는 약 2억입니다. 건물 임차권, 장비, 그리고 헌터들의 계약입니다. 하지만 부채가 3억 5천이니까, 순자산은 -1억 5천입니다. 보통이라면 이런 길드는 누가 사가겠어요?" "그래서 저를 본 거죠." 준호가 말했다. 정혜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당신,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네요. 맞아요. 당신은 절망적이고, 나도 절망적이니까, 우리는 거래를 할 수 있어요." 그녀는 종이에 숫자를 적었다. "5천만 원. 이걸로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어요. 나머지 빚은 당신 것입니다." 준호는 그 숫자를 봤다. 5천만 원. 그는 현재 지갑에 몇 만 원도 없었다. "기한은?" "한 달. 이 기한까지 5천만 원을 못 모으면, 이 거래는 없어진다. 그 다음엔 내가 협회에 해산을 신고할 거고, 길드는 공식적으로 없어진다." 정혜진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당신이 정말 이걸 하려면, 이 계약서에 서명하고 가. 그리고 한 달 안에 돈을 가져와." 그녀는 펜을 건넸다. 준호는 펜을 받았다. 계약서는 간단했다. 신월 길드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이준호에게 이전한다는 내용이었다. 5천만 원의 대가로. 준호는 서명했다. 정혜진이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한 장을 준호에게 건넸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이제 신월 길드의 길드장입니다. 현재 길드의 멤버는 세 명입니다. 저 밖에 있는 여자는 사무원 겸 D급 헌터 박지은. 그리고 지하실에서 운동하고 있는 두 명은 E급 헌터 김수호, 임준혁입니다." 그녀는 일어섰다. "이제 나갈게요. 당신은 여기서 뭔가를 해야 할 거 같은데, 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 달 안에 5천만 원을 못 가져오면, 이 길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화이팅." 정혜진은 사무실을 나갔다. 그 뒤로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준호는 혼자 남겨졌다. 책상 위에는 신월 길드의 재무 현황표와 계약서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신월 길드의 인감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조용히 숨을 쉬었다. 5천만 원. 한 달. 그것은 불가능한 숫자였다. F급 헌터가 한 달에 벌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하지만 준호는 일반적인 헌터가 아니었다. 그는 10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10년 속에, 포인트 계산 시스템의 허점이 있었다. 그것은 몇몇 사람들만 알고 있었던 비밀이었다. 아니, 심지어 그들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준호는 책상에서 일어났다. 지하실로 내려갈 시간이었다. 신월의 멤버들을 만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