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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 소환됐는데 던전을 통째로 물려받았습니다

2

동굴 깊숙이로 들어갈수록 공기가 변했다. 처음에는 미묘했다. 습기의 정도. 온도. 냄새. 준호는 사무실에서 일한 지 몇 년이 되었는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같은 공기 속에서만 숨을 쉬어왔다. 이곳의 공기는 달랐다. 더 묵직했다. 마치 무언가가 섞여 있는 것처럼. 발 아래의 바닥도 변했다. 처음엔 딱딱한 암석이었지만, 점점 더 부드러워졌다. 흙. 이끼. 젖은 것들. 준호의 구두 밑창이 축축해졌다. 그리고 빛이 있었다. 처음엔 눈의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희미한 초록빛이 벽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야광이끼인가? 준호는 손을 들어 가까이 가져갔다. 손가락이 벽에 닿자 초록빛이 조금 더 밝아졌다. 온기였다. 그 빛에서 나오는 것이 온기였다. 준호는 멈춰 섰다. 숨을 고르기 위해. 자신의 심장이 너무 크게 뛰고 있지 않은지 확인하기 위해. 얼마나 깊이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손목시계를 찾아 보려고 했지만, 어둠 속에서 문자판을 읽을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피곤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평소 야근을 하면 오후 2시 정도면 어김없이 밀려오는 피로감이 없었다. 이상했다. 준호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초록빛이 더 강해지는 방향으로. 본능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단순히 어둠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었을 수도 있다. 벽을 따라 한 손을 짚고 걸었다. 발이 바닥의 작은 돌에 걸렸다. 준호는 넘어지지 않았다. 몸의 균형을 잡는 것이 이전보다 쉬웠다. 이것도 이상했다. 평소 준호는 계단에서도 자주 비틀거렸는데. 초록빛이 점점 더 강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목소리를 들었다. "오래 기다렸다." 준호의 발이 멈췄다. 목소리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앞에서인가? 뒤에서인가? 아니다. 위에서인가? 벽에서인가? "놀라지 마라, 아이." 여성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여성이라고 해서 부드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 목소리에는 깊이가 있었다. 나이가 있었다. 마치 산 자체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넌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준호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목이 말랐다. "말해. 겁먹지 마라." 그 목소리는 어디서나 들렸다. 동시에 어디서도 들렸다. 준호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누구십니까?" 목소리가 웃었다. 웃음은 메아리처럼 동굴 전체에 울렸다. 준호는 귀를 막고 싶었지만,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면 더 위험할 것 같았다. "넌 내 것이다." "뭐라고요?" "이곳은 네 것이다. 그리고 난 이곳의 것이다. 따라서 넌 내 것이다." 준호는 이해하지 못했다. "당신은... 뭔가요?" 침묵이 흘렀다. 초록빛이 조용히 맥동했다. 마치 호흡하는 것처럼. "이름을 가진 것들이 나한테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너는 날 부르고 싶으면... 루미라고 부르거라. 너희 말로는 그것이 가장 가깝다." 루미. 준호는 그 이름을 되뇌었다. 입 안에서만. 말로 내지는 않았다. "넌 왜... 여기에 있어요?" "더 정확히는 넌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물어야 한다." "네. 왜 제가 여기에 있어요?" 다시 침묵. 초록빛이 더 밝아졌다. 동굴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벽은 생각보다 매끄러웠다.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바닥에는 무늬가 있었다. 기하학적인 무늬. 준호는 그것이 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알 수 없기도 했다. "세상이 바뀌었다." 루미의 목소리가 울렸다. "언제부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3개월 전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지만, 시간이라는 건 나한테는 의미가 없다. 어쨌든 세상이 바뀌었다. 규칙이 생겼다. 게임 같은 규칙. 넌 그걸 느껴봤는가?" 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 안에서는 더 명확하다. 이곳은... 오래된 곳이다. 매우 오래. 200년 이상. 그리고 그 규칙이 내게 닿았을 때, 나는 깨어났다. 오래되고 잊혀진 의식이 다시 깨어났다. 그리고 그 규칙은 나에게 너를 줄 거라고 말했다." "제를... 준다고요?" "넌 주인이 될 것이다. 이곳의 주인. 내 주인." 준호의 다리가 떨렸다. 이건 현실이 아니었다. 확실했다. 사무실에서 자는 중이었을 것이다. 야근하다가 책상에 머리를 묻고 자다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초록빛이 밝았다. 손가락이 느껴졌다. 공기의 습도가 느껴졌다. 발 아래 돌의 울퉁불퉁함이 느껴졌다. 이건 꿈이 아니었다. "당신은... 뭐예요?" "나는 이곳이다. 이곳의 의식. 이곳의 심장. 그리고 이제 넌 이곳의 손이 될 것이다." 루미의 목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위에서가 아니라 모든 곳에서 들렸다. 동굴의 벽에서. 바닥에서. 공기 자체에서. "무서운가?"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 없이. "좋다. 그 정도는 정상이다. 그리고 넌 혼자가 아니다. 여기 다른 것들도 있다. 이미 깨어난 것들. 그들은 너를 기다리고 있다." "다른... 것들?" "그들을 만나보거라. 이미 가까이 있다. 다만 어둠이 짙었을 뿐이다." 초록빛이 폭발적으로 밝아졌다. 준호는 눈을 감았다. 너무 밝았다. 몇 초가 지나 눈을 떴을 때, 세상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동굴이 아니었다. 거대한 공간이었다. 천장은 높았고, 벽은 멀었다. 초록빛은 모든 곳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끼처럼. 곰팡이처럼. 아니, 그것보다 더 살아있는 무언가처럼. 그리고 그곳에는 움직이는 것들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만 보이던 투명한 생명체가 지금은 초록빛 아래에서 더 명확히 보였다. 그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개였다. 각각 다른 크기로. 다른 움직임으로. 그리고 더 크고 어두운 것도 있었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바위처럼. "이제 시작이다." 루미의 목소리가 준호의 귀에만 속삭였다. "넌 이제 주인이다." 준호는 손을 뻗었다. 초록빛을 만져보고 싶었다. 손가락이 야광이끼에 닿는 순간, 따뜻함이 흘렀다. 열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감각이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느낌. 그러나 접촉한 것은 이끼일 뿐이었다. 준호가 손을 거두자, 초록빛이 살짝 더 밝아졌다. "반응한다," 루미가 말했다. "벽이 너를 인식했다. 이곳 모든 것이 너를 인식했다." 준호는 천천히 돌아섰다. 그 거대한 공간의 규모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사무실의 회의실도 이 공간의 발끝 정도는 될까? 아니. 이것은 지하철 역사 같은 규모였다. 아니, 더 컸다. 천장이 너무 높았다. 초록빛이 사라지는 지점까지 몇십 미터는 있어 보였다. "몇 년 전... 아니, 3개월 전이라고 했는데," 준호가 중얼거렸다. "여기는... 이미 있었던 거야?" "200년 이상." 루미의 대답이 명확했다. "그럼 왜 지금? 왜 나한테?" 준호는 투명한 생명체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것들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마치 자신을 관찰하는 것처럼. 그 중 하나가 준호에게 더 가까워졌다. 크기는 손가락 정도였다. 투명한 몸체 속에서 뭔가 흐르고 있었다. 혈액 같은. 아니, 더 밝은 것. 초록빛과 같은 색깔의 뭔가가. "그것은 그림이다," 루미가 말했다. "그림?" "이름이다. 너를 위해 부여했다. 이곳에서 가장 약한 것. 가장 투명한 것." 그림이라 불린 투명한 생명체가 준호에게 더 다가왔다. 호기심이 가득한 움직임이었다. 마치 아이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저쪽은 석화다." 루미가 어두운 것을 가리켰다. 움직이지 않던 그것. 거대한 돌덩어리 같은 것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이 없었다. 아니,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준호는 그것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피부로 느껴지는 무게감. 시선이 아닌 다른 종류의 인식. 준호의 호흡이 얕아졌다. "저것들이... 뭐야?" "던전에 깃든 것들이다. 몬스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한 괴물이 아니다." 루미의 목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귓가에 닿을 정도로. 따뜻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어머니가 자식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그 내용은 어떤 동화보다 낯설었다. "3개월 전, 세계가 변했다. 너희 말로 '시스템'이 도래했다. 처음엔 소수의 인간들만 깨어났다. 그들은 규칙을 배웠고, 수치를 얻었고, 힘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루미가 멈췄다. 초록빛이 한 번 더 맥박처럼 강하게 빛났다. "이곳은 이미 깨어있었다. 200년 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뭘... 기다리고 있었어?" "주인을." 준호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실제로 보이는 소름. 팔의 미세한 털들이 곧추섰다. "나는 이곳의 의식이다," 루미가 계속했다. "벽이고, 빛이고, 공기다. 그리고 이 둘도," 루미가 그림과 석화를 가리켰다. "이곳에 깃든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불완전했다." "불완전?" "주인이 없었다. 던전이 없었다. 단지 오래된 공간일 뿐이었다. 너희 말로, 동굴일 뿐이었다." 루미의 목소리에 뭔가 슬픔 같은 것이 묻어났다. 하지만 그것은 곧 사라졌다. "그런데 3개월 전, 규칙이 바뀌었다. 세계에 '시스템'이 내려왔고, 동시에 우리도 깨달았다. 우리는 던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러려면... 주인이 필요했다." 준호는 입을 열려 했다. 질문이 수십 개 떠올랐다. 하지만 루미가 먼저 말했다. "왜 너인가? 그것을 묻고 싶을 것 같다." "응... 네. 왜?" "운명이다. 아니면 우연이다. 둘 다 같은 말이다." 루미가 웃었다. 그 웃음은 초록빛 속에서 울려 퍼졌다. 마치 동굴 전체가 웃는 것 같은 느낌. "너는 이곳에서 죽어야 했다. 야근 중에 쓰러진 것. 그것은 너의 약한 심장 때문이었다. 하지만 너는 여기로 떨어졌다. 우리 곁으로. 그리고 우리는 너를 살렸다. 너의 심장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었다. 초록빛으로 채웠다." 준호는 자신의 가슴을 만졌다. 심장이 뛰고 있었다. 너무 빠르게. 마치 처음 뛰는 것처럼. "이제 넌 이곳의 주인이다. 법적으로도 그럴 것이다. 외부 세계에서 그렇게 정해질 것이다. 던전은 법으로 보호받는다. 던전의 주인도 마찬가지다. 넌 더 이상 평범한 직원이 아니다." "그림과... 석화는?" "너의 것이다. 너가 관리해야 할 것이다. 너가 성장시켜야 할 것이다. 너가 사랑해야 할 것이다." 루미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마치 자신의 아들을 소개하는 어머니처럼. 준호는 그림을 다시 봤다. 손가락 크기의 투명한 생명체는 여전히 준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호기심에 가득 찬 움직임으로. "저기 어두운... 석화는?" "그는 이곳의 최강자다. 200년 동안 이곳을 지켜온 것. 하지만 지금은 너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 너를 완전히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석화라 불린 거대한 것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것이 무시의 표현인지, 경외의 표현인지 준호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루미가 말했다. "이제 넌 여기서 나갈 수 없다." 준호의 호흡이 멈췄다. "뭐라고?" "이곳의 주인이 된 대가다. 너는 이곳과 연결되었다. 너의 생명이 초록빛으로 바뀌었다. 외부 세계로 나간다면, 그 연결은 끊어질 것이다. 그리고 넌 죽을 것이다." 루미가 잠시 멈췄다. "아니면, 너는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영원히." 준호는 무릎을 꿇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을 뿐이었다. 그림이 다가와 준호의 손가락 주변을 빙빙 돌았다. "넌 지금 두렵다," 루미가 말했다. "그것은 정상이다. 하지만 공포는 곧 익숙함이 된다. 그리고 익숙함은 사랑이 된다. 이것이 시간의 기술이다." 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초록빛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무언가를 봤다. 그것은 루미의 형태였다. 여성의 형태. 투명하고 밝고, 준호를 감싸고 있는 형태. "나는 너를 지킬 것이다," 루미가 말했다. "이것이 내 의무다. 주인의 어머니로서." 어머니라는 단어가 준호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 순간, 준호는 깨달았다. 자신이 이 거대한 초록빛의 세계에서 정말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가장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