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교 장로, 정파 잡일꾼으로 위장취업하다밤은 더 깊어졌다.
현명은 뜰을 떠났다. 다른 제자들이 자는 방향과 반대쪽으로, 문파 뒤편의 산림으로 향했다. 송준과 진아의 코골이 소리가 들렸던 방을 지나쳐, 청목 장로의 거처도 피했다. 이설의 방은 불이 꺼져 있었다.
산림 깊숙이 들어가자 소리가 줄었다. 나뭇가지가 부스러질 정도의 움직임도 줄였다. 마교 장로 신분이 남긴 본능이었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법.
현명은 계곡 물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았다. 물소리가 크면 외부의 음향 감지가 어렵다. 은폐 장소로는 충분했다.
양옷을 벗었다. 산바람이 피부를 스쳤다. 밤 공기는 차갑고 촉촉했다. 하지만 현명은 감각을 닫았다. 온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앉았다.
단전에 손을 모았다. 두 손의 엄지와 검지가 마주보도록, 나머지 손가락은 펼친 형태. 정파의 기본 수련 자세가 아니었다. 마교식이었다. 더 정확히는, 그가 빙의되기 전 읽던 소설에서 그 세계의 마교가 사용하는 자세였다.
이 몸의 기억과 그의 지식이 겹쳤다.
기감 경지의 제자가 느끼는 것. 배꼽 아래 한 치 반 지점에서 울렁거리는 온기. 그것을 '단전'이라 부르고, 그것이 기의 집결점이라 배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제자들은 이것이 환상이라는 걸 안다. 실제 기는 혈맥을 따라 흐른다. 단전은 그저 초심자를 위한 비유일 뿐이다.
현명은 그 환상을 거부했다.
혈맥을 감지했다.
복부 깊숙이, 대동맥 주변부터 시작해 상복부로 이어지는 미세한 경로들. 정파 수련법은 이것들을 무시하고 단지 단전의 온기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정파의 방식은 느리지만 안전했다. 단계적이었다.
마교식은 달랐다.
혈맥 전체를 동시에 자극했다. 기를 강제로 흐르게 했다. 위험했다. 오류 없는 몸이라면 혈맥이 터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명의 몸은 오류였다.
'시작해.'
그는 생각했다.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기가 움직였다.
처음에는 실처럼 가느다란 흐름이었다. 배꼽 아래에서 시작해 상복부로 올라오는 감각. 마치 누군가 손가락으로 내부를 따라 그으며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차갑기도 하고 뜨겁기도 했다.
혈맥이 반응했다.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맥박이 귀에 울렸다. 손끝에 열이 모였다.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했다.
현명은 떨림을 제어했다. 이설에게 보인 약함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완벽한 제어가 필요했다. 마교식 수련에서 몸의 떨림은 곧 실패를 의미한다. 기의 제어 불능. 경지 돌파 실패.
그래서 그는 더 깊게 밀어붙였다.
기가 복부 전체를 에워쌌다. 이제는 흐름이 아니라 소용돌이였다. 뭔가가 팽창했다. 단전이 아니라, 그보다 깊은 곳에서. 혈맥과 혈맥의 교차점에서.
그곳이 돌아갔다.
'기축.'
그것이 경지 돌파의 신호였다. 정파식으로는 며칠에서 수주가 걸리는 과정이었다. 충분한 기를 단전에 모아, 그것이 자연스럽게 혈맥을 타고 흐르도록 길들이는 것. 수행자의 인내심과 안정성을 시험하는 과정이었다.
현명은 그 과정을 건너뛰었다.
시스템 오류가 그것을 허락했다. 정상 속도의 3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현명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결과는 명확했다.
현명은 눈을 떴다.
손가락에서 푸른 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교의 기. 정파의 기와는 색깔이 달랐다. 정파의 기는 흰색 또는 황색이었다. 온화하고 선하다고 알려진 색깔들이었다. 현명의 손에서 피어오른 기는 푸른색이었다. 냉정했다. 위험했다.
현명은 서둘러 기를 거두었다.
손에서 불이 사라졌다. 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이건 문제다.'
이미 손을 본 이는 이설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손이 떨렸을 뿐, 기의 색깔까지 보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어둠이 깔려있었고, 손가락도 자세히 보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만약 누군가 이 순간을 봤다면, 그것은 단순한 '약한 제자의 손떨림'이 아니라 '정파가 아닌 다른 길의 수련'이라는 증거가 된다. 특히 청목 같은 장로라면, 그 기의 색깔만으로도 모든 것을 알아챌 것이었다.
현명은 다시 손을 모았다.
이번에는 더 신중하게. 기를 모으되,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마치 물을 손 안에 가두듯이.
'기축 경지. 기를 혈맥에 축적하는 단계.'
원작 소설에서 읽었던 설명이었다. 이 경지에서는 기가 몸 전체를 순환하기 시작한다. 혈맥의 구조가 명확해진다. 힘도 눈에 띄게 증가한다. 약한 제자도 이 경지에 도달하면, 일반인과는 다른 수준의 신체 능력을 갖게 된다.
현명은 그것을 이미 갖고 있었다.
마교 장로의 경지는 기축보다 훨씬 높았다. 원작 소설에서 강호가 도달했다던 기변 경지, 그보다 아래인 기순환 경지 정도를 갖고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몸은 약했다.
'기축 경지의 몸에 기순환 경지의 기를 담을 수 없다.'
그것이 현명이 깨달은 현실이었다. 혈맥이 너무 좁았다. 기가 넘쳐흘렀다. 손이 떨렸다. 기의 색깔가 밖으로 새어나왔다.
현명은 기를 줄였다.
기축 경지의 수준으로. 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기가 안정됐다. 손의 떨림이 멈췄다. 가슴의 철렁함도 줄었다.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현명은 생각했다.
기축 경지에 안정되면, 그 다음이 기해 경지다. 기를 혈맥에 축적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기를 '정제'하는 단계였다. 불순물을 제거하고, 기의 질을 높이는 과정이었다. 그것을 거쳐야만 기순환 경지로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명은 이미 기순환 경지의 기를 갖고 있었다.
'오류 때문에... 아니다.'
현명은 생각을 멈췄다.
시스템 오류라는 표현이 맞을까?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을까? 빙의 자체가 오류인가? 아니면 이 세계에서만 그의 기가 다르게 작동하는 것인가?
현명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해봐야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생존이었다. 이설의 의심을 피하는 것. 감찰관 한비를 속이는 것. 청목 장로를 지키는 것. 그리고 강호라는 배후를 파악하는 것.
나머지는 나중이었다.
현명은 기를 거두었다.
산림의 밤 공기가 몸을 식혔다. 손이 마디마디 결렸다. 하지만 흔적은 없었다. 기의 색깔도 없었다. 떨림도 없었다.
그는 옷을 입었다.
계곡의 물소리가 계속됐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밤은 여전히 깊었다. 아무도 이 곳에 오지 않았다.
현명은 걸어나왔다.
문파로 돌아가는 길에서, 그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이설이 말한 대로다.'
약해야 한다는 말이. 진짜 약해야 한다는 말이.
하지만 약한 척이 아니라, 진짜 약해지는 것. 그것이 가능할까?
현명은 웃음을 삼켰다.
마교 장로가 약한 제자인척 하는 것. 그것은 이미 약한 척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강함을 버리는 것이었다. 자신의 기를 봉인하는 것이었다. 높은 경지의 기를 낮은 경지에 가두는 것이었다.
'천천히. 단계적으로.'
현명은 중얼거렸다.
'약함이 익숙해질 때까지.'
문파의 불이 보였다. 청목 장로의 방. 서운이 자고 있을 방. 그리고 이설의 방.
현명은 그들의 창문을 지나쳤다. 이설의 방은 여전히 어두웠다. 하지만 현명은 느꼈다.
그 어둠 속에서 누군가 깨어있다는 것을.
현명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밤은 여전히 깊었다. 하지만 새벽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현명은 자신의 방에 들어섰다.
촛불을 켜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그는 자신의 손을 들어올렸다. 손가락 사이로 푸른 기가 흐르고 있었다. 아직도.
'진정되지 않았다.'
그는 숨을 고르며 손을 쥐었다. 푸른 기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다시 쥐었다. 또 빠져나갔다.
마교의 기다. 정파의 기와는 다른, 그 특유의 색깔. 누군가 본다면 그것만으로도 끝이었다. 한 번의 의심으로 충분했다.
현명은 침대에 앉았다. 어둠 속에서 그는 자신의 몸을 관찰했다. 기축 경지의 기가 몸 곳곳을 순환하고 있었다. 팔뚝, 다리, 가슴. 마교식 운행법으로 강화된 경맥들이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손가락을 펼쳤을 때 푸른 기가 새어나오는 것. 그것은 단순한 미용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통제력의 문제였다. 높은 경지의 기를 낮은 경지의 몸에 억지로 담으려니, 기가 피부를 뚫고 빠져나오려 했던 것이다.
'기축 경지 제자가 마교식 기운을 드러낸다면?'
현명은 시나리오를 그려봤다.
한비가 본다. 감찰관이 그 푸른색을 목격한다. 그러면 신고다. 정파 본산으로의 보고다. 그리고 나면?
'청목이 연루된다.'
아니, 청목은 이미 연루되어 있었다. 그를 받아들인 것만으로도. 원작에서 청목이 강호에게 암살당하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약한 문파를 정파 본산의 눈밖에 나게 하지 않기 위해, 청목은 현명을 감싸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강호에게는 기회가 되는 것이었다.
'이설은?'
그녀는 이미 의심하고 있었다. 밤중에 깨어있던 이유는 현명이 밖에 나간 것을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마교의 기운까지 드러난다면, 그녀는 더 이상 침묵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현명은 손을 다시 들어올렸다. 이번엔 의도적으로 기를 모았다. 손바닥 위에 푸른 구체가 형성되었다. 작고 아름다운, 마교의 기운.
그 아름다움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현명은 손을 펼쳤다. 구체가 흩어졌다. 푸른 기가 방 안을 떠다녔다가 천천히 사라져갔다.
'기축 경지로 내려간다.'
그렇게 결심했을 때, 현명은 이설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진짜 약해야 한다'
약한 척이 아니라, 진짜 약해지는 것. 그것은 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기를 봉인하는 것이었다. 높은 경지의 힘을 낮은 경지에 가두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것이었다.
'단계별로.'
현명은 중얼거렸다. 자신의 경맥을 따라 기를 흐르게 했다. 기축 경지 수준의 가는 흐름으로. 푸른색은 희미해졌다. 손가락을 펼쳤을 때 더 이상 기가 새어나오지 않았다.
좋다.
하지만 이것도 부족했다. 기축 경지 초입 수준으로 더 내려가야 했다. 마교의 색깔이 완전히 정파의 옅은 청색 아래에 숨겨질 때까지.
현명은 눈을 감았다.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봤다. 경맥이 가지처럼 뻗어있었고, 기가 그 사이를 흘렀다. 높은 경지의 기는 두껍고 진했다. 현재의 몸에는 어울리지 않는 기였다.
그는 천천히 그 흐름을 제한했다. 경맥의 일부를 의도적으로 막았다. 기가 갈 수 없는 곳들을 만들었다. 높은 경지의 힘을 그곳에 가두었다.
아픔이 흘러들었다.
'이것도 견뎌야 한다.'
현명은 이를 악물었다. 기축 경지의 기는 천천히 가늘어졌다. 손을 펼쳤을 때 이제 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정파 제자의 기축 경지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하지만 그 안에는 기감 경지의 기가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기축 경지의 기가 있었다.
'3단계로 내려간다.'
그것은 강력함을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약함을 배우는 것이었다.
현명은 침대에 누웠다. 밤은 여전히 깊었다. 하지만 아침은 분명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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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경, 현명은 눈을 떴다.
몸이 떨리고 있었다. 기를 봉인하는 과정에서 경맥이 손상되고 있었다. 마교식 기운이 정파식 경맥에 맞지 않으면서 생기는 부작용이었다.
'이것도 적응해야 한다.'
현명은 심호흡을 했다. 떨림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하지만 통증은 남았다. 가슴과 복부의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꼬인 듯한 통증.
현명은 일어나 앉았다. 창밖을 봤다. 하늘이 아직 검었지만, 동쪽 끝이 보라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한비가 온다면, 그때까지 적응을 끝내야 한다.'
한비는 감찰관이다. 정파 본산에서 파견된 감시자. 그는 비정상을 감지하는 것이 일이었다. 그리고 현명은 이미 비정상이었다. 비정상적인 수련 속도, 비정상적인 기의 색깔, 비정상적인 경지 돌파.
모든 것이 은폐되어야 했다.
현명은 다시 기를 흐르게 했다. 이번엔 더 낮게. 기감 경지 초입 수준으로. 마교의 기운은 깊숙이 묻혔다. 몸 깊은 곳의 경맥에, 폐부 근처에, 골수 속에.
'누군가 내 기를 읽으려 하면, 기감 경지의 약한 제자로만 보일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기축 경지에 도달했다는 사실 자체를 지워야 했다. 도달했던 경지를 의도적으로 내려갔다고 해야 했다. 혹은 애초에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야 했다.
현명은 손을 펼쳤다. 손가락 끝에 아주 희미한 청색이 어렸다. 정파의 청색이었다. 마교의 푸른색은 완전히 사라졌다.
'좋다.'
그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설이 깨어있었기 때문이다.
현명은 그것을 생각했다. 이설이 자신을 추적하고 있다면, 그녀는 이미 무언가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었다. 밤중에 산림으로 나가는 제자를 목격한 제자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이설과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것이 다음 문제였다. 진실을 말할 것인가. 거짓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그 중간 어딘가에서 부분적인 진실로 그녀를 납득시킬 것인가.
현명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창밖의 하늘이 더욱 밝아지고 있었다. 곧 아침이 올 것이었다. 그러면 또 다른 거짓의 하루가 시작될 것이었다.
약한 척. 아니, 약해지기. 강함을 봉인하고, 약함에 적응하고, 매일 그 거짓 속에서 살아가기.
'그리고 기축 경지에 머물며, 점차 더 낮은 단계로 내려가기. 한비가 올 때까지.'
현명은 거울을 들었다. 거울 속의 얼굴은 평소와 같았다. 차갑고, 무표정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듯한. 하지만 그 눈 아래 검은 그림자가 생기고 있었다.
수련의 부작용인가, 아니면 은폐의 피로인가.
현명은 거울을 내려놨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생존이었다. 이 문파에서 정체가 들통나지 않고 살아남는 것. 청목이 암살당하기 전에 강호의 배후를 파악하는 것. 그리고 이설을 지키는 것.
원작에서 이설은 강호의 수하가 되었다. 그 결말을 피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현명은 창밖을 다시 봤다. 동쪽 하늘이 이제 분명한 푸른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새들이 울기 시작했다. 문파의 일상이 깨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현명은 또 다른 거짓을 연기해야 했다.
약한 제자로서.
오류를 은폐한 제자로서.
마교 장로가 아닌, 정파의 약한 제자로서.
'이제 시작이다.'
현명은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냉소가 섞여있었다.
'진정한 은폐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