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교 장로, 정파 잡일꾼으로 위장취업하다# 1-1
눈을 떴을 때 천장이 움직였다.
아니, 천장이 움직인 게 아니었다. 시야가 흔들렸다. 눈꺼풀이 무거웠고, 머리가 둔탁했다. 마치 수심 깊은 곳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느낌. 현명은 손가락을 움직여봤다. 손가락이 있었다. 당연히.
근데 손가락이 자기 손가락이 아니었다.
경기를 일으킬 뻔했다. 손을 들어올려 눈앞에 갖다댔다. 가늘고 하얀 손. 손등의 혈관이 파랗게 돌아나왔다. 이건 자기 손이 아니었다. 자기 손은 이렇게 약해 보이지 않았다. 자기 손은—
기억이 끊겼다.
현명은 몸을 일으켰다. 침대였다. 좁은 침대. 나무로 만든 걸레질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주변은 어둑했다. 창문으로 새어드는 빛은 희미했다. 이른 새벽이거나, 아니면 비가 오는 날씨였다. 현명은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산 냄새가 났다. 흙과 이끼, 그리고 목재의 냄새.
자기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서울이 아니었다. 그건 확실했다. 자신의 원룸은 에어컨 냄새가 났다. 냉동실의 냄새. 이곳은 다르다. 이곳은 진짜였다. 너무 진짜였다.
현명은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앉았다. 발이 차가운 나무 바닥에 닿았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차가움이 퍼졌다. 감각이 너무 선명했다. 현명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지 손가락으로 팔을 꼬집어봤다.
아팠다.
"뭐, 뭐야..."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더 높았다. 더 부드러웠다. 거의 사춘기 소년의 목소리 같았다. 현명은 손으로 목을 만졌다. 목도 가늘었다. 근육이 거의 없었다.
거울을 찾아야 했다.
방을 둘러봤다. 문이 하나 있었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막다른 골목 같은 좁은 공간만 보였다. 현명은 문으로 향했다.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
복도였다. 나무로 만든 복도. 왼쪽으로 계단이 보였다. 오른쪽으로는 더 많은 문들이 있었다. 누군가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 외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현명은 계단으로 향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나무 바닥이 삐걱거렸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점점 더 밝아졌다. 새벽이었다. 동쪽에서 창문으로 희끄무레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홀이 있었다. 넓지 않은 홀. 목재로 지어진 집. 산 속의 집. 현명은 거울을 찾아 주변을 훑었다.
물통이 있었다. 금속 물통. 현명은 물통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낯선 얼굴이었다.
가늘고 창백한 얼굴. 검은 머리. 어린 얼굴. 스물쯤? 아니, 더 어렸나? 눈은 검었고, 눈 아래에는 다크서클이 있었다. 뺨이 쏙 들어가 있었다. 이 몸은 제대로 먹지 못한 몸이었다.
현명은 물통을 집어 들었다. 무거웠다. 이 몸은 약했다. 물통을 집어 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뭐... 뭔 일이야?"
현명은 중얼거렸다. 그 순간 무언가가 떠올랐다.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종이 조각처럼 희미했지만, 점점 명확해졌다.
'정파 암투록.'
현명은 멈췄다. 그 이름. 그 제목. 그건 자신이 읽던 소설이었다.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회사에서 일하다 지쳐서 손가락으로 스크롤하던 웹소설.
'정파 암투록'은 정파와 마교의 대립을 배경으로 한 무협 소설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자신은 그 소설 속에 있었다.
현명은 다시 물통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봤다. 얼굴이 떠올랐다. 소설 속 조연 캐릭터의 얼굴. 이름은... 이름은...
'서운의 제자.'
소설에서는 이 캐릭터에게 특별한 이름이 없었다. 그냥 '서운의 제자'였다. 서운은 '정파 암투록'에서 한 무명 문파의 주인이었다. 그리고 이 제자는 그 문파의 잡일꾼이었다. 소설에서 이 캐릭터는 거의 배경 취급을 받았다. 단 한 번, 서운이 제자를 깨우는 장면에서만 등장했고, 그 이후로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현명은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건 뭐야, 이건 뭐야..."
빙의 같은 건 없었다. 그런 건 판타지였다.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일어나고 있었다.
현명은 깊게 숨을 쉬었다. 자신은 전 마교 장로였다. 고위 간부였다. 마교 내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였다. 당황하는 건 어울리지 않았다. 현명은 천천히 심호흡을 반복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좋아. 현명은 생각했다. 이게 뭐든 상관없다. 현실이 됐으니까. 지금 중요한 건 상황 파악이다.
현명은 홀 주변을 천천히 걸어다녔다. 목재로 만든 집. 이전에는 본 적 없는 건축 양식이었다. 하지만 소설에서 본 묘사와 일치했다. 문파의 본부 건물. 작은 목재 건물. 산 속에 지어진.
소설을 다시 떠올려봤다. 기억을 정리했다. 내용이 떠오르고 있었다. 소설의 줄거리. 인물들. 전개.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강호.'
강호는 소설의 숨은 배후였다. 정파 내의 파벌 지도자. 이 문파를 장악하려고 하는 자. 그리고 약 100화 정도 뒤에, 강호는 이 문파를 침략할 것이었다. 서운은 죽을 것이었다. 이설은 강호의 수하가 될 것이었다.
현명은 손을 주먹으로 쥐었다.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지 명확해졌다. 마교에서 벗어나 이 이상한 세계에 빙의했다. 그리고 이 몸의 주인—아니, 자신은 이제 이 소설 속의 조연 캐릭터가 되었다.
하지만 자신은 조연이 아니었다.
현명은 침착하게 주변을 살폈다. 창문 밖으로 동이 틀고 있었다. 곧 문파의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었다. 자신도 여기 있는 척해야 했다. 누군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면 안 됐다.
현명은 자신의 몸을 정리했다. 손을 털고, 입가를 정돈했다. 거울로 다시 확인했다. 얼굴은 여전히 낯설었지만, 표정은 잔잔했다. 냉정했다.
그 순간, 위층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현명은 홀의 구석으로 물러섰다.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마치 처음부터 여기 있었던 것처럼.
발자국이 계단으로 향했다.
현명은 기다렸다. 자신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순간을. 이상한 세계에서, 낯선 몸으로, 정해진 파멸을 피하기 위해.
미간이 옅게 구부러졌다. 냉소적인 미소가 입가에 떴다.
"좋아. 시작해보자."
현명의 중얼거림은 아무도 듣지 못했다. 계단 위에서 누군가의 발이 한 계단씩 내려오고 있었다.
계단에서 내려오는 발자국이 멈췄다.
현명은 눈을 떴다. 시선은 창밖의 희미한 산봉우리를 향해 있었지만, 귀는 모든 소리를 포착했다. 옷 스치는 음, 숨 고르는 리듬. 중년 남자. 다소 서툰 움직임. 이것이 서운이었다.
"어? 제자 녀석이..."
서운의 목소리였다. 낮고, 어딘가 불안정한. 소설에서 읽은 그대로였다. 이 남자는 문파 주인이라는 이름만 있고, 실제로는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현명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현명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움직임은 조연의 것이어야 했다. 서둘렀지만, 어딘가 어색한. 아직 깨어나지 못한 듯한.
"주인님."
현명의 목소리는 작았다. 자신의 실제 나이를 생각해보니, 이 몸의 목소리와 맞아떨어졌다. 소설 속 조연은 열다섯 살이었다. 대단원만 봐도 그 정도의 또래 캐릭터였다.
서운이 현명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놀라움과 약간의 의심이 섞여 있었다.
"밤새 뭘 한 거야? 이렇게 일찍?"
현명은 고개를 약간 숙였다. "잠을 잘 못 잤습니다."
거짓이었다. 현명은 방금 깨어났다. 하지만 이 말은 자연스러웠다. 조연 캐릭터라면, 새로운 환경에서 충분히 불면의 밤을 보낼 수 있다. 서운은 그렇게 받아들일 것이었다.
"그렇구나."
서운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현명의 옆에 섰고, 함께 창밖을 봤다. 산 위로 해가 올라오고 있었다. 정파 본산에서 제법 거리가 있는 이 외곽 산간의 작은 문파. 그곳의 아침이었다.
"열심히 해야 한다, 이 녀석. 여기는 보잘 것 없는 곳이지만, 그래도..."
서운이 말을 흐렸다. 현명은 그의 심정을 알고 있었다. 정파 본산의 눈에 들기 위해 이 작은 문파에서 실적을 내려고 하는 것. 하지만 실력이 없어서 번번이 실패하는 것. 원작에서 강호가 그를 이용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네, 주인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현명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조연답게.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냉정했다. 서운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남자는 관찰력이 없었다.
"좋아. 그럼 아침 식사를 준비하자. 오늘은 정파에서 감찰관이 온다고 했는데..."
서운이 중얼거렸다.
현명의 눈이 움직였다. 감찰관. 그것은 원작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다. 정파 본산에서 보낸 감시자. 그리고 강호의 첫 번째 수단. 현명은 원작에서 그 감찰관의 이름을 기억했다.
한비.
"감찰관이요?"
현명이 물었다. 표정은 여전히 온순했지만, 마음속은 다른 계산을 시작했다. 원작의 전개를 미리 안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누가 올지, 무엇을 할지, 어떤 순서로 일이 진행될지. 모든 것이 예정된 수순이었다.
하지만 현명은 그 수순을 바꿀 생각이었다.
"응. 뭔가 이상한 일이 있었나 봐. 본산에서 직접 사람을 보냈어. 너희들은 평소처럼 수련하고, 문파 일을 돕고 그런 식으로... 이상한 짓을 하지 말고."
서운이 현명을 바라봤다. 그 시선 속에는 어딘가 경계하는 것 같은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곧 사라졌다. 이 남자는 지속적으로 의심을 유지할 정도의 정신력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현명은 절을 했다. 이 동작도 자연스러웠다. 마치 이 몸이 원래 이 문파에 있었던 것처럼. 마치 현명이 애초부터 이 조연 캐릭터였던 것처럼.
서운이 부엌으로 향했다. 현명은 그를 따랐다. 문파의 다른 곳들도 깨어나고 있었다. 이설의 목소리, 다른 제자들의 발자국.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부엌에서 현명은 일을 시작했다. 밥을 짓고, 반찬을 준비하고, 상을 차렸다. 모든 것이 조연이라면 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현명의 손가락은 정확했다. 마교의 거처에서 배운 효율성이 몸에 밴 것이었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현명은 일부러 느리게 움직였다.
"우와, 오늘 반찬이 많네?"
이설이 부엌에 나타났다. 서운의 딸. 열네 살 정도로 보이는 영리한 눈동자의 여자 아이. 원작에서 이 아이는 훗날 강호의 수하가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한 문파의 제자일 뿐이었다.
"새벽에 못 자서..."
현명이 답했다.
이설이 현명을 자세히 봤다. 그 시선은 짧았지만, 날카로웠다. 현명은 그것을 느꼈다. 이 아이는 다른 제자들과 달랐다. 관찰력이 있었다. 앞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을 인물이었다.
"그렇구나."
이설이 말했다. 의심은 사라졌지만, 호기심은 남아 있었다. 현명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이 아이는 미래에 자신의 정체에 가장 가까이 다가올 사람이 될 것이었다.
아침 식사가 진행됐다. 서운, 이설, 그리고 문파의 다른 제자들이 모두 모였다. 현명은 옆에 서서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물, 밥, 반찬.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오늘 감찰관이 오니까, 너희들 좀 정신 차려. 특히 수련할 때는 진지하게 해. 알겠지?"
서운이 제자들을 바라봤다.
"네, 주인님."
현명도 함께 대답했다. 다른 제자들과 동시에. 목소리의 크기, 톤, 모든 것을 맞췄다. 현명은 이미 이 곳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은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한비가 올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청목 장로가 암살당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강호의 공작이 시작될 것이다. 모든 것이 정해진 수순이었다.
현명은 물을 따르면서 생각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까. 아니, 바꿔야 한다. 이 몸이 원래 살아야 할 미래는 없었다. 소설에서 이 조연은 원작의 전개 속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현명은 다른 사람이었다. 마교의 장로였다.
현명은 미소를 지웠다. 표정을 다시 정리했다. 조연의 것으로.
이설이 현명을 다시 봤다.
현명은 그 시선을 느꼈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었다. 이설과의 관계는 천천히 쌓아야 할 것이었다. 신뢰가 필요했다. 시간이 필요했다.
아침이 계속됐다. 산 위로 해가 올라왔다. 그리고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현명은 부엌에서 나와 뜰로 나갔다. 다른 제자들과 함께 수련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현명의 눈은 산 아래 길을 향해 있었다.
감찰관이 올 길이었다.
"시작해보자."
현명이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오직 산바람만 그 소리를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