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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삶, 이번엔 배신자를 먼저 벤다

3

이튿날 아침, 카인은 훈련장에 나가기 전에 도서관을 다시 찾았다. 이리스는 없었다. 그 자리에는 다른 기록자가 있었는데, 카인을 보자마자 일어나 떠났다. 마치 미리 정해진 신호처럼. 카인은 어제 본 적성 판정 자료들을 더 깊이 뒤졌다. 이번엔 달랐다. 표면이 아니라 구조를 본다는 의미에서. 훈련 점수표. 첫 주차: 루시안 8.5, 마리아 7.2, 헨리 6.8, 토마스 5.9... 이틀 뒤 기록. 루시안 8.5, 마리아 7.8, 헨리 7.1, 토마스 6.2... 그리고 또 이틀 뒤. 루시안 8.5, 마리아 8.1, 헨리 7.4, 토마스 6.5... 카인의 손가락이 멈췄다. '전원 상승.'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루시안만 8.5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그곳이 천장인 것처럼. 아니, 천장이 아니다. 천장은 더 높다. 루시안의 수치가 더 오르지 않는 건 기술적 한계 때문이 아니다. 카인은 옆 페이지를 넘겼다. 훈련 항목별 분석. 기술: 루시안 8.5, 다른 학생들 평균 5~7. 신체 능력: 루시안 6.5, 다른 학생들 평균 6~7. '이게 맞나?' 신체 능력에서는 루시안이 오히려 중간 이하였다. 기술 항목에서만 압도적으로 우월했다. 카인이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적성 판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헬리콥터 타고 추락하는 시뮬레이션에서 기술, 신체 능력, 판단력, 생존 본능 등이 종합적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루시안은 왜 한 항목만 뛰어난가? '훈련이 공정하지 않다.' 이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카인의 눈이 변했다. 차갑게. 훈련장으로 가는 길에 카인은 도미닉 크로우를 찾았다. "기록자 레드, 뭘 원하는가?" 도미닉의 목소리는 귀찮다는 투였다. "훈련 방식이 개인차를 반영하고 있나?" 카인이 물었다. 도미닉이 웃었다. "무슨 소린가?" "루시안의 기술 점수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다른 학생들은 계속 상승하는데." 카인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도미닉의 웃음이 멈췄다. "기록만 하는 게 기록자의 일이다, 레드." "알고 있다." 카인이 대답했다. "다만, 정확한 기록을 위해선 훈련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도미닉은 카인을 한 번 쭉 훑어봤다. 그리고 말했다. "학생들이 경쟁하게 설계된 거다. 그게 전부다." "경쟁." 카인이 반복했다. "맞다. 이 학원의 목적은 최고의 헌터를 찾는 거다. 경쟁이 없으면 그건 불가능하다." 도미닉이 훈련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점수는... 상대적이다." 그 말이 카인의 뒷덜미를 쳤다. 상대적이다. 카인은 훈련장에 서서 학생들을 봤다. 루시안은 여전히 8.5를 받고 있었다. 기술 항목에서. 하지만 신체 능력에서는 6.5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이 올라갈수록 그 간격은 벌어졌다. '점수는 상대적이다.' 다시 말해, 루시안의 기술이 정말로 8.5인 게 아니라, 다른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그 정도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루시안이 훈련에서 받은 기술 점수 8.5는 무엇인가? 카인은 훈련을 더 자세히 관찰했다. 도미닉이 루시안에게 주는 과제. "추락 중 방향 전환. 3번." 루시안이 완벽하게 해낸다. 도미닉이 마리아에게 주는 과제. "추락 중 방향 전환. 2번." 마리아도 완벽하게 해낸다. '다른 과제를 준다.' 카인은 메모를 했다. 루시안: 더 어려운 과제. 완벽한 수행. 8.5점. 마리아: 더 쉬운 과제. 완벽한 수행. 7.8점. '점수는 과제의 난이도로 결정된다.' 그렇다면 과제를 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도미닉. 도미닉 크로우가 각 학생에게 개별적으로 난이도를 다르게 설정하고 있다. 카인이 다른 날의 기록을 다시 봤다. 기술 점수 상승의 패턴. 마리아: 7.2 → 7.8 → 8.1 각 단계마다 더 어려운 과제를 받았다. 그리고 그걸 성공했다. 루시안: 8.5 → 8.5 → 8.5 항상 같은 난이도의 과제를 받았다. 그리고 항상 완벽하게 해냈다. '루시안은 더 이상 상승할 수 없도록 조정되고 있다.' 이 깨달음이 카인의 머릿속에서 명확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기숙사로 돌아온 저녁, 카인은 루시안을 봤다. 루시안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루시안." 카인이 말했다. "응?" 루시안이 고개를 돌렸다. "넌 왜 신체 능력에서 점수가 안 오르는 것 같아?" 카인이 물었다. 루시안의 표정이 변했다. 아주 미묘하게. "그건... 뭐, 신체 능력이 부족한 거겠지." 루시안이 다시 천장을 봤다. "기술은 8.5니까?" "그건 내가 잘하는 분야야." 루시안의 목소리가 조금 딱딱해졌다. "기술 훈련만 계속 받고 있다." 카인이 말했다. 질문이 아니라 진술로. "뭐... 그럴 수도 있지." 루시안이 일어나 앉았다. 그의 눈이 카인과 마주쳤다. "너 혹시 훈련장에서 뭘 본 거야?" "구조를 봤다." 카인이 대답했다. "학생들이 경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걸." 루시안이 한숨을 쉬었다. "맞다." 루시안이 인정했다. "여기서는 점수가 상대적이야. 내가 잘할수록 남들은 더 어려운 훈련을 받게 돼. 그리고... 내가 신체 능력 훈련을 덜 받는 이유는..." 루시안이 말을 멈췄다. "왜?" 카인이 물었다. "내가 기술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으니까. 약점을 보충하기보다는 강점을 더 강화하는 게 나한테 유리하다고 판단된 거야." 루시안이 말했다. "누가?" "도미닉. 아니면 그 위의 누군가." 루시안이 일어서 창문을 봤다. "이 학원의 모든 것은 계산되어 있어. 누가 최고가 될지도." 그 순간, 카인의 머릿속이 명확해졌다. 기록자들이 훈련에서 제외되는 이유. 그들은 관찰자다. 이 경쟁 구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기록자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더 많은 관찰자가 필요했다는 뜻이다. 이 학원에서 진행되는 것이 단순한 적성 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카인은 천천히 침대에 누웠다. 천장의 그림자가 춤을 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춤의 의미가 보였다. 누군가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카인은 도서관의 3층 열람실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책장 사이로 누군가가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리듬이었다. 루시안의 보폭. 그의 뒤를 따르는 또 다른 발소리—헐떨리는, 불안정한 걸음이었다. 카인은 책을 들었다. 실제로 읽지는 않았다. 그저 시선을 가렸을 뿐이다. 책장의 틈새로 그들이 보였다. 루시안과 테오 바인. 테오는 루시안 곁에 불편하게 서 있었다. 어깨를 굽히고, 눈길을 자꾸 다른 곳으로 돌렸다. 루시안은 반대였다. 완벽한 자세, 편안한 미소. 마치 오래된 친구와 만난 것처럼. "요즘 훈련 점수 봤어?" 루시안의 목소리가 저음으로 흘러나왔다. 친근함과 관심으로 가득 찬 톤이었다. "네. 올라갔습니다." 테오가 답했다. 뭔가 자극적인 것을 물었을 때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많이 올라갔더라. 넌 빨리 따라잡고 있어. 좋은 거야." 루시안이 한 발 가까워졌다. 테오의 몸이 경직되었다. 하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 그게 중요한 신호였다. "이 학원, 어떻게 생각해?" 루시안이 물었다. "어... 잘 모르겠는데요." "솔직해. 여기서 우리가 뭘 하고 있는 건 것 같아?" 테오가 말을 더듬었다. "선발 과정?" "그게 전부라고 생각해?" 루시안의 웃음이 나왔다. 따뜻하면서도 뭔가 의도가 있는 웃음이었다. "너처럼 똑똑한 애가?" 카인의 눈살이 좁혀졌다. '칭찬으로 시작한다.' "우리 반을 봐. 카인, 아이리스, 나. 우리는 뭔가 다르지 않아?" 루시안이 계속했다. "네... 점수가 높으니까요." "그게 아니야." 루시안이 손을 들었다. 정확한 제스처였다. "점수가 높은 이유가 뭘까? 우리가 더 열심히 해서? 아니면..." 루시안이 일시정지했다. 극적인 침묵이었다. "우리가 애초부터 정해져 있어서?" 테오의 호흡이 짧아졌다. "정해져... 있다고요?" "도미닉이 뭘 하는지 알아?" 루시안이 문제에 답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우리 점수를 매기는 기준이 뭐라고 생각해?" "노력... 기술..." "노력은 상대적이야. 넌 아무리 해도 카인보다 빨리 배울 수 없어. 내가 아무리 해도 아이리스보다 정확할 수 없어. 그게 설계야, 테오. 우리 각자의 천장이." 카인은 호흡을 느렸다. 루시안의 이 말은 첫 번째 삶에서 나누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이건 새로운 시나리오였다. 테오가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그럼... 점수는 왜요?" "우리의 상대적 가치를 정하기 위해서야. 누가 가장 유용한지. 누가 가장 통제하기 쉬운지. 누가 가장 위험한지." 루시안이 테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테오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그게 더 중요했다. "너는 지금 올라가고 있는 중이야. 점수가. 알지?" 루시안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그건 그들이 너를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는 뜻이고." "가능성을... 무엇의?" 루시안이 웃음을 터뜨렸다. 짧고 톤이 없는 웃음이었다. "혹은 위험성. 우리가 카인을 칭찬할 때가 언제야? 우리 둘 다 그 안에 있을 때지. 다른 누가 들을 수 없을 때. 그런데 기록자들은?" 루시안이 시선을 들었다. "저 문제 푸는 애들은 뭐가 다를까?" 카인이 얼굴을 책에 묻었다. "기록자들이 훈련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 있어?" "아니요..." "그들은 우리를 보고 있어. 누가 통제할 수 있는지, 누가 돌발적인지, 누가 협력할 수 있는지. 너처럼 점수가 올라가는 애들은 그들에게 흥미로운 대상이야." 테오의 목이 울렸다. 삼킴이 보였다. 두려움의 신호였다. 하지만 루시안은 그 두려움을 먹이처럼 삼았다. "넌 지금 선택의 기로에 있어, 테오." 루시안이 말했다. "그냥 점수 따라가는 학생으로 살 거야? 아니면... 뭔가 다른 길을 찾아볼 거야?" "다른 길이... 뭐죠?" "아직은 말할 수 없어. 하지만 넌 기억해야 해. 이 학원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관찰당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들의 시선을 받는 것만으로 넌 이미 뭔가가 되어버렸다는 걸." 루시안이 한 걸음 물러섰다. "좋은 책 찾았어?" 테오가 고개를 저었다. "내일 훈련장에서 봐. 그리고 테오." 루시안이 떠나면서 돌아봤다. "누구한테도 이 대화 하지 말아. 우리가 기록되고 있는 건 알잖아. 음성 기록은 아니겠지만... 조심해야 돼." 테오가 혼자 남겨졌다. 카인은 책장 사이에서 그의 얼굴을 봤다. 창백함. 혼란. 그리고 뭔가 더 위험한 것—호기심. 루시안은 테오를 포섭하지 않았다. 루시안은 테오를 심었다. 의심의 씨앗을. 반발심의 씨앗을. 그리고 무엇보다, 루시안 자신이 다른 길을 알고 있다는 확신의 씨앗을. 카인은 천천히 책을 내려놨다. 첫 번째 삶에서 루시안은 카인에게 배신을 제안할 때, 카인을 직접 접근했었다. 둘이 친했으니까. 신뢰가 있었으니까. 이번엔 달랐다. 루시안은 테오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약한 고리부터. 그리고 그를 통해 다른 이들을 연결할 생각이었다. 느슨한 네트워크. 공식적이지 않은 연대. 기록자들도 놓칠 만큼 자연스러운 것. 카인은 일어서 책을 제자리에 꽂았다. 이번 삶에서 루시안의 시작은 전과 달랐지만, 목적지는 같을 것이었다. 카인을 제거하는 것. 하지만 이번엔 카인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인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