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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소환됐는데 직업이 상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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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미나 아카데미 아침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올 때, 준호는 이미 깨어 있었다. 어제 루시아가 남긴 말들이 뇌를 맴돌았다. 게임에 속한 자들은 게임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 규칙을 바꾼다. 그 문장의 무게감은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침대에서 일어나 손을 펼쳤다. 어제 칼에 맞은 부위들은 이미 붓기가 빠져 있었다. 이 몸은 뭔가 이상했다. 회복 속도가 정상인 게 아니었다. 준호는 스킬 북을 꺼냈다. [스킬 북] ───────────────── 현재 레벨: 1 경험치: 0/100 ───────────────── 습득 스킬: 없음 ───────────────── 제목 없음의 스킬(해금 불가) ───────────────── '제목 없음이라니.' 화면을 몇 번 터치해봐도 반응이 없었다. 다만 그 항목만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게임 속 숨겨진 요소처럼. 준호는 메모장을 펼쳐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들을 정렬하기 시작했다. 1. 원진의 정체 미상 - 신체에 새겨진 것 2. 루시아와 마법사들의 목적 - '용사'라고 불렀지만 신뢰 부족 3. 스킬 북 - 경험치 시스템, 제목 없는 항목 4. 발드윈 - 준호의 혈통을 알고 있는 자 5. 게임의 규칙 - 아직 전혀 모름 문이 빨갛게 빛났다. 준호는 깜짝 놀라 스킬 북을 내려놨다. 원진이 아니었다. 방 밖에서 누군가 노크를 하고 있었다. "김준호 학생입니까?" 목소리는 공식적이고 차갑다. 준호는 옷을 입고 문을 열었다. 앞에는 흰 제복을 입은 두 명의 인물이 서 있었다. 그들의 옷깃에는 금색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준호는 이 문장을 어디서 봤는지 기억했다. 루시아의 옷에도 있었다. "루미나 아카데미 입시 담당입니다." 여자 인물이 말했다. 그녀의 눈은 준호를 스캔하듯이 훑었다. "어제 밤의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왕국은 당신을 루미나 아카데미에 입학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준호의 심장이 철렁했다. 어제 밤? 평가라는 건 아마도 루시아와의 검술 훈련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입시 평가였단 말인가? "입학 통지서입니다." 남자 인물이 진홍색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준호가 그것을 받으려는 순간, 그의 원진이 희미하게 떨렸다. 무언가 중요한 일이 시작되려 한다는 신호처럼. "아, 잠깐. 몇 가지 물어봐도 되나요?" "질문이 있으시면 아카데미에서 받으시면 됩니다. 오늘 오후 3시까지 아카데미에 도착하시기 바랍니다. 마차가 정문 앞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돌아서고 있었다. 준호는 편지를 들었다. 봉인된 그것은 따뜻한 열감을 내고 있었다. "잠깐, 루미나 아카데미가 뭔데요?" 여자 인물이 조금 멈추고 뒤를 봤다. 그녀의 눈에는 묘한 감정이 떠올랐다. 놀라움? 아니면 의심? "용사를 기르는 학교입니다. 마법사들과 검사들을 배출하는 왕국의 정예 교육 기관이죠." "그런데... 어제 제가 뭘 했길래 합격이 된 거예요?" "그건 당신이 스스로 깨달아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떠났다. 준호는 편지를 들었다. 잠깐 고민했다가 신중하게 봉인을 뜯었다. [루미나 아카데미 입학 통지서] ───────────────── 이 서장을 받는 자에게: 당신은 왕국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소수의 인재로 인정됩니다. 루미나 아카데미는 마법과 검술, 그리고 신비의 학문을 배우는 곳입니다. 입학 후 당신은: 1. 기초 마법 이론 2. 전투 훈련 3. 왕국의 비밀에 대한 교육 을 받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당신의 경우, 발드윈 원장이 직접 지도할 것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경고: 이 학교의 비밀을 외부에 유출하는 자는 왕국의 법에 따라 처벌받을 것입니다. ───────────────── 준호의 눈이 한 부분에 멈췄다. '발드윈 원장이 직접 지도할 것으로 예정' 그 인물이다. 준호의 혈통 비밀을 아는 자. 게임 속의 중립적 NPC로 표현되었던 그 존재가 준호를 직접 지도한다는 것인가? 준호는 침대에 앉았다. 이건 마치 체스판에서 자신의 위치가 바뀌는 것 같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는 게임의 규칙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 게임이 그를 적극적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아카데미라는 더 큰 무대로. 스킬 북을 다시 꺼냈다. 여전히 경험치는 0이었다. 하지만 제목 없음의 스킬은... 준호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누르고 있었다. 반응이 없었다. '아직은 시간이 아닌가?' 준호는 준비를 시작했다. 옷을 챙기고, 메모장에 적은 정보들을 머릿속으로 한 번 더 정렬했다. 그리고 나가기 전에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의 자신은 약해 보였다. 하지만 그 눈은 여전히 다르게 빛나고 있었다. '게임의 규칙을 찾겠다고 했지.' 준호가 중얼거렸다. '규칙을 바꾸려는 자라고 해도 먼저는 그 규칙을 알아야 한다.' 원진이 가슴팍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마치 누군가 그의 결의를 인정하듯이. 오후 2시 50분. 준호는 정문 앞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검은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의 문에도 금색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루미나 아카데미의 상징. 준호가 탔다. 마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준호의 원진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마치 뭔가가 그를 잡아끌려고 하는 것처럼. 이 감각은 어제 밤 루시아의 마법과 비슷했다. 마차가 출발했다. 하지만 준호는 느꼈다. 이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공간이 구부러지는 느낌. 현실이 비틀리는 감각. 마치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문턱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차가 멈췄다. 문이 열렸을 때, 준호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을 마주했다. 거대한 성 같은 건축물. 그 탑들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고, 벽면에는 별처럼 빛나는 마법의 룬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성 입구에는 수십 명의 학생들이 서 있었다. 모두 준호와 비슷한 나이였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달랐다. 이미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선택받은 자들의 자부심이 서려 있었다. 준호는 마차에서 내렸다. 그 순간, 모든 학생들의 눈이 그에게 모였다. 그리고 그중 한 명, 검은 머리의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또 다른 신인이 도착했네." "발드윈 선생이 직접 지도할 거라더니, 이번엔 누구야?" 준호는 그들의 시선을 견뎌냈다. 게임이라면, 이것도 게임의 일부였다. 그리고 게임은 항상 상호작용을 통해 규칙을 드러낸다. 준호는 한 발 나아갔다. "김준호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원진이 가슴에서 빛났다. 마치 자신의 정체를 선언하듯이. 루미나 아카데미의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 루미나 아카데미 입학식 대강당은 거대했다. 천장은 마법 룬문자로 그려진 별자리로 가득 찼고, 그 빛들이 은은하게 내려와 약 이백 명의 학생들을 비췄다. 준호는 행렬의 맨 뒤에 서 있었다. 입장 순서가 그렇다는 건, 평가 순위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도 역시 질 좋은 인재들이군." 단상 위의 발드윈 원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는 육십을 넘긴 노인이었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칼날 같은 예리함이 있었다. 준호는 그 눈이 자신을 스캔할 때의 감각을 기억했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보듯이. "루미나 아카데미는 단순한 학교가 아니다." 발드윈이 손을 들었다. 그 순간, 대강당의 벽면에 있는 마법석들이 한 번에 밝아졌다. 빛이 하늘로 솟구쳤다. "여기는 선택받은 자들의 무대다. 마법, 검술, 그리고..." 그가 잠시 멈췄다. 준호는 그 침묵이 의도된 것임을 알았다. 무언가를 숨기는 침묵이었다. "...그 이상의 것들을 배우는 곳이다." 앞줄의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준호는 자신의 원진이 부드럽게 맥박치는 것을 느꼈다. 시스템의 논리 책에는 없던 정보들이 있다는 뜻이었다. 아직도. "이제 능력 평가를 시작한다." 발드윈의 손짓이 떨어지자, 대강당의 중앙에 거대한 마법 원형이 나타났다. 룬문자들이 회전하면서 준호의 눈을 어지럽혔다. 첫 번째 학생이 원형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검은 머리, 정연한 얼굴, 그리고 귀족의 비에 젖은 걸음걸이. 아카데미 입구에서 준호를 반겨주던 남자였다. "카인 레이스." 발드윈이 중얼거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주변 학생들의 반응이 즉각적이었다. 입장 초반부터 그의 이름이 나온다는 것은, 그가 이미 평가받고 있다는 뜻이었다. 카인이 손을 들자, 그의 주변에 마법이 흘러내렸다. 검은 에너지가 그의 몸을 감싸면서 형태를 이루었다. 마치 검은 갑옷을 입은 듯이. "어둠 마법, 상급 수준. 검술 실력도 우수하군." 발드윈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인은 원형을 나가며 다른 학생들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 시선 속에는 확신이 있었다. 자신이 최고라는 확신. 한 명, 또 한 명. 학생들이 차례로 들어갔다. 마법을 시전했다. 능력을 드러냈다. 불의 마법, 물의 마법, 그리고 가끔은 준호가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능력들. 시각을 왜곡하는 마법. 중력을 조종하는 마법. 대강당 전체를 울리게 하는 음파 마법. 발드윈은 각각에 대해 짧은 평가를 내렸다.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우수하다. 기대된다. 훌륭한 기초를 가지고 있군." 준호는 자신의 차례가 다가올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아직 절반도 안 되었다. 계산해보면, 자신은 대략 백 번째쯤 될 것 같았다. 그러다가 한 소녀가 원형 안으로 들어왔다. 금발에 푸른 눈. 그 눈동자는 계산적이었다. 준호는 그 눈을 본 순간, 자신과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게임을 하는 사람. "엘리아 마르시스." 발드윈이 이름을 부르자, 엘리아가 손을 펼쳤다. 그리고 그 손 위에 작은 불의 구체가 떠올랐다. "화염 마법, 중급 수준. 하지만..." 발드윈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제어 능력이 뛰어나군. 효율성이 우선인 마법사 같다." 엘리아의 입술이 올라갔다.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계산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준호의 차례까지 남은 인원이 점점 줄어들었다. 열 명. 다섯 명. 세 명. 마지막으로 한 명의 학생이 나갔다. 준호는 이제 대강당의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모였다는 것을 느꼈다. 거의 모든 학생이 자신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학생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발드윈이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지. 준호가 앞으로 나아갔다. 마법 원형의 경계선에 발을 딛자, 룬문자들이 준호를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의 몸을 스캔하는 듯이. 마치 자신을 평가하는 듯이. 준호는 원진에 손을 대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도 모르지만. 그것이 존재하고, 그것이 빛난다면,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원진이 부드럽게 빛났다. 하지만 그 빛은 작았다. 마법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히 빛일 뿐이었다. 대강당에 침묵이 흘렀다. "흠." 발드윈이 처음으로 의미 있는 음성을 냈다. 그것은 평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의문이었다. "마법이 없는가?" 준호는 대답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신경 써서. "아직 없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대강당 전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비웃음이 아니었다. 당황스러운 웃음이었다. "마법이 없다고?" 카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이제 경멸이 서려 있었다. "발드윈 선생, 혹시 실수하신 건 아니신가요? 마법도 없는 학생을 왜..." 발드윈이 손을 들었다. 그 순간 대강당이 조용해졌다. "그렇군. 잠깐만." 발드윈이 일어났다. 그리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천천히, 마치 사냥꾼이 먹이 주위를 맴도는 듯이. 준호는 발드윈이 자신에게 가까워질 때마다, 원진이 점점 더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발드윈이 준호의 앞에 섰다. "김준호. 너는 왜 여기에 왔는가?" 준호는 잠깐 생각했다. 이것도 게임의 일부였다. 규칙을 드러내는 상호작용이었다. 정직하게 대답할 수도 있었고, 전략적으로 대답할 수도 있었다. 준호는 자신의 직업이 무엇인지 기억했다. 경영학과 대학생이었다. "규칙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발드윈의 눈이 반짝였다. "규칙을?" "네. 이 곳의 규칙. 이 게임의 규칙." 대강당이 또 다시 요동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반응이었다. 경계심이었다. 발드윈은 웃음을 터뜨렸다. "좋다. 그렇다면 보여주겠다. 진짜 규칙을 말이야." 그의 손이 올라갔다. 그 순간, 거대한 렌즈가 준호의 눈 위에 나타났다. 마치 전에 시스템의 논리 책에서 본 것처럼. 그 안에는 0과 1이 빠르게 흘러내렸다. 준호의 눈이 시린 듯이 아팠다. 하지만 그 순간, 준호는 무언가를 이해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발드윈이 손을 내렸다. 렌즈가 사라졌다. "마법이 없다고? 아니다. 넌 다른 종류의 마법을 가지고 있군. 흥미로운 아이다." 발드윈이 단상으로 돌아갔다. "김준호. 너는 특별 수업 반에 배치된다. 나의 직접 지도를 받을 것이다.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카인의 얼굴이 굳었다. 엘리아가 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호기심이 있었다. 그리고 준호는 알았다. 이것이 게임의 시작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