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몰락한 문파의 마지막 제자도시의 경계는 선명했다.
숲이 끝나고 콘크리트가 시작되는 지점. 명우는 그곳에서 멈췄다. 옷자락을 정리했다. 찢어진 부분은 어쩔 수 없었다. 청운산에서 내려온 지 이틀. 절벽에서 떨어진 지 정확히 36시간.
떨어지지 않았다는 게 아직도 이상했다.
시스템이 세 번째 선택지를 활성화했을 때, 현실이 반전됐다. 회색 늑대의 발톱이 명우의 목덜미에 닿기 직전, 세상이 흰색으로 점멸했고, 그 다음엔 아무것도 없었다. 기억이 끊긴 게 아니라 시간 자체가 점프했다. 눈을 뜬 순간 명우는 이미 산 아래 계곡에 있었다. 물에 잠긴 상태로.
[회복 중... 71%]
지금 시스템의 상태창을 보니 그렇게 떴다. 명우의 팔뚝에는 여전히 늑대의 이빨자국이 남아 있었다. 다섯 줄. 깊이가 다르다. 제일 깊은 곳은 뼈에 닿아 있었을 것 같다.
도시로 들어가는 길. 명우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어?"
목소리가 나왔다. 뒤에서.
"형, 그 옷... 어디 사냥하다 왔어?"
뒤돌아본 명우의 시선이 멈췄다. 남자. 이십 대 초반. 운동복 차림. 하지만 그것보다 눈에 띄는 건 등에 찬 무기였다. 정확히는 무기처럼 보이는 것. 투명한 색깔의 검 같은 물체가 등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거?"
남자가 명우의 시선을 따라갔다. 자신의 등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아, 이거? 상급 사냥꾼 증표지. 난 이지훈. 청운사냥꾼조합에 소속된 지 3년 됐어. 형은?"
명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스템을 불렀다.
[상급 사냥꾼?]
인터페이스가 떠올랐다. 아니, 부분적으로만.
[정보 부족]
이지훈이 계속 말했다.
"혹시 사냥꾼 미등록자세요? 아니면 다른 지역에서 온 건가? 아무튼 저 옷은 좀... 산에 너무 오래 있었던 것 같은데, 시스템 점수가 낮으면 도시 안에서도 위험할 수 있어요."
"시스템 점수?"
명우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거칠었다. 3년 동안 사람과 말하지 않으면 목이 이렇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어? 모르세요?"
이지훈의 눈이 동그래졌다.
"진짜 미등록자네. 글쎄, 간단하게 말하면... 여기서는 힘이 곧 경제력이고 경제력이 곧 안전이라는 거죠. 사냥으로 얻은 몬스터 재료를 팔 때 시스템이 판정하는 점수에 따라 가격이 달라져요. 점수가 높으면 높은 등급 사냥터에 들어갈 수 있고, 거기서 얻은 재료는 당연히 비싸고."
이지훈이 명우의 팔뚝의 상처를 가리켰다.
"그런데 저 상처는... 혹시 회색 늑대?"
명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쳤다. 회색 늑대는 중급 몬스터인데, 저 상태면 상급 사냥꾼이라도 위험하거든. 근데 혼자 다뤘어? 아니면..."
"시스템 등록은 어디서 한다?"
명우가 끊었다.
이지훈이 손가락으로 도시를 가리켰다.
"저 중앙에 보이는 높은 건물? 청운조합 본부야. 거기 가면 심사를 받고 등급을 매겨줘. 근데 한 가지 조언이라면, 저 상처 먼저 치료받고 가세요. 흉터가 남으면 나중에 후회해요."
명우가 도시로 들어섰다. 이지훈이 따라왔다.
"혹시 같이 팀을 구성할 생각은 없으세요? 저희 팀이 한 명 부족한데."
"아니다."
"바쁘신가 봐요."
이지훈은 금방 포기했다. 대신 도시를 안내했다.
거리는 예상과 달랐다. 명우가 생각한 '3년 후의 도시'는 좀 더 평온할 줄 알았다. 하지만 여기는 달랐다.
사람들이 걷는 방식이 다르다. 모두가 긴장되어 있었다. 눈빛이 예리했다. 그리고 일반인과 사냥꾼들의 구분이 명확했다. 사냥꾼들은 거리를 다르게 점유했다. 일반인들이 자동으로 길을 비켰다.
그리고 곳곳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봐요, 저 노점상들? 다 사냥꾼들이야. 몬스터 재료 거래소지."
한 노점에선 투명한 결정체를 놓고 흥정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른 곳에선 누군가 금속 갑옷 같은 걸 입고 있었다. 명우의 시선이 그곳으로 갔다.
[미지의 장비 - 정보 부족]
"저건 몬스터 가죽으로 만든 갑옷이야. 가격이 미쳐. 저 사람이 최소한 고급 사냥꾼은 돼야..."
이지훈의 설명이 계속됐다.
하지만 명우는 더 이상 듣지 않았다.
눈에 띈 게 있었다. 골목 안쪽.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여덟 명.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 사람은 흙으로 범벅된 옷을 입고 있었다. 무장이 부족했다.
"제발... 제가 한 주만 더 줄 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기간은 기간이다."
검은 정장의 리더 격 남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그의 주변 공기가 흔들렸다. 명우의 생존 감각이 울렸다. 위험 신호.
그 남자의 뒤로 뭔가 날카로운 것이 형성됐다. 바람 같은 것. 아니, 정확히는.
[시스템 스킬 감지 - 정보 부족]
그 바람이 흙범벅한 남자를 스쳤다. 그의 팔이 베여나갔다. 비명 대신 울음이 나왔다. 신음처럼.
"다음 주 금요일까지. 못 가져오면..."
검은 정장 남자가 웃었다.
"본때를 보여주지."
그들이 사라졌다. 골목 깊은 곳으로.
"어?"
이지훈이 명우를 보고 있었다.
"형, 왜 움직이려고..."
명우가 움직인 건 본능이었다. 발이 골목을 향했다. 그 남자를 따라가려고.
"아, 아니야! 저건..."
이지훈이 팔을 잡았다.
"저건 신용 회수단이야. 저들한테 걸리면 사냥꾼이고 뭐고 다 끝나. 형 수준이면 더 위험하고."
명우가 멈췄다.
"신용 회수단?"
"네, 그... 사냥꾼들이 빌린 돈을 못 갚으면 저들이 나서서 받아내는 거죠. 시스템 점수가 높을수록 더 많이 빌릴 수 있고, 못 갚으면... 글쎄, 저 사람 팔 봤잖아요."
명우는 흙범벅한 남자가 쓰러진 자리를 봤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일반인들이 그곳을 우회해서 걸어갔다.
"여기서는 이게 자연스러운 거구나."
명우가 중얼거렸다.
"뭐?"
"아니다."
명우가 다시 걸었다. 조합 본부로.
이지훈이 따라오면서 계속 설명했다. 사냥꾼의 등급. 점수의 중요성. 신용 시스템. 그리고 사냥터의 위험도.
명우는 듣는 척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다른 곳에 있었다.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은 이유.
회색 늑대의 정체.
그리고 시스템의 세 번째 선택지.
3년 동안 배운 것과 잃어버린 것의 정체.
이 세상이 3년 사이에 이렇게 변했다는 것.
명우의 시선이 골목의 방향으로 다시 돌아갔다. 신용 회수단이 사라진 곳으로.
그곳에는 또 다른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명우가 처음 느낀 시스템과는 완전히 다른.
조합 본부는 생각보다 허름했다.
회색 콘크리트 벽, 녹슨 철제 문, 그리고 입구 위에 붉은 글씨로 쓰인 '사냥꾼 조합'이라는 간판. 간판의 끝부분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아무도 수리하지 않은 지 꽤 오래된 것 같았다.
"여기가 정식 등록처야. 내가 소개해주면 절차가 좀 빨라. 등록비는 시스템 점수로 내거든."
이지훈이 문을 밀고 들어갔다. 명우가 뒤따랐다.
내부는 어둡고 좁았다. 형광등 하나가 깜빡거렸고, 책상 뒤에 앉은 중년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연기가 천장 근처에서 맴돌다가 환기구로 빨려들어갔다.
"어, 지훈이. 또 신인 데려왔네?"
남자가 담배를 물린 채로 말했다. 그의 눈은 명우를 훑고 지나갔다. 평가하는 시선이 아니었다. 그저 등록 절차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기계적인 눈이었다.
"네. 이 분이 새로 도시에 오신 분이고, 조합 등록하고 싶으시대요."
이지훈이 명우를 소개했다. 명우는 자신이 준비한 정보를 떠올렸다.
"이름은?"
"서명우."
"나이?"
"스물여덟."
명우는 거짓을 말했다. 자신의 진정한 나이를 아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3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그 사이에 자신이 몇 살을 먹었는지 명우는 알 수 없었다. 절벽에서 떨어진 순간과 계곡에서 깨어난 순간 사이의 36시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스물여덟을 골랐다. 어리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 충분히 경험이 있어 보이지만 이제 막 사냥을 시작하는 신인으로 보일 수 있는 나이.
"신분증은?"
"없습니다."
명우가 담담하게 답했다.
담배를 피우던 남자가 손을 멈췄다. 그의 눈이 명우에게로 돌아갔다.
"없다고?"
"고아입니다."
이것도 거짓이었다. 하지만 이 거짓은 깊은 진실을 담고 있었다. 청운파의 모든 사람이 죽었다. 어떤 의미로든 명우는 고아나 다름없었다.
담배 남자가 이지훈을 바라봤다.
"이 친구 어디서 데려온 거야?"
"길에서 만났어요. 무기도 들고 있고, 몸 상태도 좋아 보여서."
"무기?"
남자가 명우를 다시 봤다. 명우는 등에 메고 있는 검을 드러냈다. 칼집은 낡았지만 칼날은 빛났다. 절벽에서 떨어지기 전에 닦아둔 것이었다.
"음... 그럼 됐다."
담배 남자가 시스템에 접근했다. 그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움직였다. 명우는 이지훈이 한 것처럼 그의 손 앞에 무언가가 있다고 가정했다. 증강현실 인터페이스. 시스템이 제공하는 또 다른 도구.
"서명우. 고아. 나이 스물여덟. 신분증 없음. 기본 검술 장비 소유. 실력 테스트 안 함."
남자가 중얼거렸다.
"테스트 안 해도 괜찮습니까?"
명우가 물었다.
"상급 사냥꾼이 데려왔으니까 괜찮다. 이지훈이가 책임지는 거고."
이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등록비는 100 점수. 매달 유지비 10 점수야. 점수 없으면 현금으로도 되는데..."
남자가 명우를 봤다.
"현금 있어?"
"없습니다."
명우가 답했다.
담배 남자가 다시 시스템에 접근했다. 명우의 앞에 무언가가 떴다. 이번에는 명우도 볼 수 있었다. 투명한 화면. 그 위에 적힌 글자들.
【 신규 사냥꾼 등록 】
이름: 서명우
나이: 28세
신분: 무등록자
등급: 1급 (초급)
시스템 점수: 0
【 등록 수수료: 100 점수 필요 】
【 현재 점수: 0 】
"점수가 없으면?"
"빚이 돼. 조합 신용으로 100 점수를 깔아주고, 넌 그걸 갚으면서 활동하는 거지. 못 갚으면..."
남자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명우는 알았다. 신용 회수단이 나선다는 뜻이었다. 흙범벅한 남자처럼.
명우는 잠깐 생각했다. 조합 신용을 받는 것은 또 다른 빚을 지는 것이었다. 이 도시의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려면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등록하겠습니다."
명우가 답했다.
담배 남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시스템이 반응했다.
【 조합 신용 100 점수 지급 】
【 현재 점수: 100 】
【 사냥꾼 등록 완료 】
화면이 사라졌다. 동시에 명우의 팔에 무언가가 생겼다. 팔찌 같은 물건이었다. 검은색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 표면에는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100
"그게 너의 신용 점수야. 그거로 모든 거 거래하고, 사냥꾼 등급도 정해진다. 점수가 높을수록 좋은 사냥터에 들어갈 수 있고, 높은 등급의 몬스터도 사냥할 수 있다."
남자가 설명했다.
"내려가는 속도가 중요하지만."
이지훈이 덧붙였다.
"뭘 말하는 거죠?"
명우가 물었다.
"등록비 100 점수. 유지비 매달 10 점수. 사냥으로 벌 수 있는 점수는... 1급 사냥꾼이 1마리에 5점수 정도야. 좋은 사냥터면 10점수까지도 가능하지만, 그건 경험이 필요해."
이지훈이 설명했다.
"그래서?"
"그래서 대부분의 신인들은 빚을 못 갚아. 점수를 벌기 전에 빚이 더 늘어나거든."
명우가 침을 삼켰다. 계산이 되는 함정이었다.
등록비 100 - 유지비 10(매달) = 90점수 남음.
한 달에 50점수를 벌어야 유지할 수 있다. 1급 사냥꾼이 10마리를 사냥해야 하는 규모였다.
하루에 한 마리 정도면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사냥터의 위험도가 있었다. 경험이 없는 신인은 안전한 사냥터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런 곳에서는 보상도 적었다.
"첫 사냥은 어디서?"
명우가 물었다.
"초급 사냥터. 동쪽 구역이 가장 안전해. 여기서 지도까지 받으면 돼."
담배 남자가 종이 지도를 건넸다. 손으로 그린 것 같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충분했다.
명우가 지도를 받았다.
"고맙습니다."
"감사는 이지훈이한테 해. 이 친구가 없었으면 넌 이미 신용 회수단 대상이었을 거야."
담배 남자가 다시 담배를 피웠다.
명우와 이지훈이 조합 본부를 나왔다.
햇빛이 명우의 눈을 찔렀다. 시스템 팔찌가 햇빛을 반사했다. 검은색 금속에 새겨진 숫자 100이 빛났다.
"이제 진짜 시작이야."
이지훈이 말했다.
명우는 지도를 펼쳤다. 동쪽 구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도시 경계 근처. 초급 사냥터.
그곳에서 뭔가 깨닫게 될 것 같았다.
시스템의 진짜 모습을. 그리고 이 도시가 정말로 어떤 곳인지를.
명우는 지도를 다시 접었다.
"가죠."
절벽에서 떨어진 후 가장 명확한 말이었다.